웃음, 반전, 세태풍자까지 담았다… 경이로운 14분 [몰아보기 연구소]

입력
2022.05.06 10:30
12면
왓챠 영화 '몸 값'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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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녀가 만난다. 심상치 않은 만남이다. 장소는 여관. 여자(이주영)는 교복을 입었다. 남자(박형수)는 30대 중후반으로 보인다. 여자는 상냥하고, 남자는 친절하다. 두 사람은 아는 사이가 아니다.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용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이 무엇을 위해 만났는지는 명확하나 대화는 예상 밖이다.

①원조교제 남자가 제시한 조건

두 사람은 원조교제를 위해 만났다. 남자는 여자가 성경험이 전혀 없다는 점에 마음이 끌렸다. 100만 원을 주고 잠자리를 하려 한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의 말이 의심스럽다. 정말 첫 경험인지 꼬치꼬치 캐묻는다.

남자는 ‘증거’가 필요하다고 하고 여자는 어쭙잖은 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결국 여자는 거짓말을 인정한다. 남자의 입이 거칠어진다. 신사 같던 이전 언행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육두문자를 쏟아내며 여자를 위협하고 흥정에 들어간다. ‘몸값’은 조금씩 깎이다 급격히 낮아진다.

②그 남자, 그 여자는 어찌 됐을까

여자는 남자의 요구에 굴복한다. 처음 받기로 했던 것에 한참 못 미치는 돈을 받기로 한다. 그래도 딱히 억울해하거나 아쉬워하지 않는다. 남자는 호기롭게 먼저 샤워를 하겠다고 한다. 여자가 방문을 열고 나간다. 카메라가 따라간다. 좁은 방에서 옥상으로 위치가 바뀐다. 교복 입은 여자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잡담을 나누고 있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풍경이다. 여자는 옥상을 한번 휙 돌아본 후 다시 방으로 향한다.

이후 펼쳐지는 일들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여자가 남자를 여관방으로 꼬드겨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남자의 육체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포획물로 여겨졌던 여자가 사실은 사냥꾼이다. 두 사람의 입장이 바뀐다. 몸값의 의미가 달라진다. 놀라운 반전이다.

③영화는 짧아도 여운은 오래간다

14분짜리 단편영화다. 짧다고 하나 여러 가지가 담겼다. 블랙유머가 담겼고, 스릴이 있다. 깜짝 놀랄 반전까지 더해진다. 강렬하고 재미있다. 졸렬한 남자, 함정을 파 놓고 있는 여자를 통해 금전만능 세태를 풍자한다. 처음부터 장면이 끊기지 않고 죽 이어져서 끝난다. 롱테이크(장면을 나누지 않고 오랫동안 찍는다는 영상 용어)로 이야기가 지닌 긴장의 밀도가 높아진다. 영화는 비록 짧으나 어느 장편영화로도 쉽게 빚어내지 못할 긴 여운을 남긴다. 의미와 재미가 단단하게 깃든 흔치 않은 단편이다.

※몰아보기 지수: ★★★★(★ 5개 만점, ☆ 반개)
이충현 감독이 2015년 내놓은 단편영화다. 이 감독은 이 영화로 영화계에 자신을 알렸다. ‘몸 값’을 발판 삼아 장편영화 ‘콜’(2020)을 연출했다. 막 서른에 접어든 감독이 메가폰을 쥐게 돼 영화계에서 화제를 모았다. ‘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극장 개봉을 미루다가 넷플릭스로 직행했다. 넷플릭스는 지난달 이 감독이 연출하는 장편영화 ‘발레리나’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몸 값’은 진선규 전종서 주연 동명 6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있다(연출은 전우성 감독). 하반기 티빙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이 감독의 재능이 궁금하다면 단편영화 ‘하트어택’(2020)을 추가로 보길 권한다. 왓챠에서 볼 수 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