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거품 공약'

입력
2022.05.05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올해 초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분석한 전국 기초단체장의 공약 이행 완료율은 72%에 육박한다. 기초단체장들은 4년 전 선거에서 공약한 내용 중 25%를 완료했고 46% 이상을 이행 후 계속 추진 중이다. 직전인 2018년 민선 6기 지자체장의 성과도 이와 유사했다. 비슷한 시기 시·도지사의 공약 이행률 역시 70.75%로 높은 수준이다. 전국 교육감의 공약 이행을 뜻하는 목표 달성도는 무려 97%에 이른다.

□ 마찬가지로 선거에서 공약을 내걸고 당선해 공직을 맡았지만 국회의원의 공약 완료율은 이에 비해 뚝 떨어진다. 매니페스토본부가 2019년 말 20대 지역구 의원의 공약 이행을 분석한 결과 완료는 약 47%에 그쳤다. 추진 중인 과제가 그와 비슷한 비율이긴 하지만 지자체장이 계속 사업을 일부 이행하고 나머지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지자체장에 비해 공약이행률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은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 문재인 정부의 공약 이행을 살피는 '문재인미터'는 현 정부의 공약 완료율을 36%로 평가한다. 876개 공약 중 파기가 263개로 30%를 넘는다. 이전 정부라고 다르지 않다. 평가 주체가 제각각이어서 객관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박근혜, 이명박, 노무현 정부 모두 집권 4년차 공약이행률이 40% 안팎이다. 미국도 오바마는 47%, 트럼프는 23%에 불과하다는 조사가 있는 걸 보면 사정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 대통령직인수위가 최근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한 뒤 공약 파기 논란이 일고 있다. 코로나 대책으로 내세운 1호 공약인 '온전한 손실보상'은 갈수록 온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의심만 산다. 거센 역풍에도 불구하고 10대 공약에 포함시켜 밀어붙이던 '여성가족부 폐지'는 국정과제에 들어있지도 않다. 취임 즉시 병사 200만 원 봉급 등 여러 복지 공약도 후퇴 중이다. 공약이라고 모두 지켜야 하는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약속을 실천하려는 시늉 한 번 없이 정부 출범 전에 줄줄이 공약을 수정한다면 누구를 뭐 하러 뽑았느냐는 말이 나오지 않겠나.

김범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