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범죄?" 당사자들이 말한다 [마음청소]

입력
2022.05.05 14:00
정신질환 당사자 단체 '10데시벨'  호소
"미디어가 정신질환자 편견 조장" 지적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1.0' 발표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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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의 범죄율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해 현저히 낮음에도 언론 보도가 정신질환의 위험성과 부정적 측면을 자극적으로 부각하는 상황이 빈번합니다."
김미현 10데시벨 1기 기획단원(지난달 28일 '2022 정신건강 연구 심포지엄'에서)

최근 조현병 환자 관련 범죄가 잇따라 보도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어느새 '조현병=잠재적 범죄자'라는 인식이 생겨버렸다. 여론이 범죄자의 정신질환 이력 자체에만 몰입하는 까닭에 이런 흐름을 옆에서 지켜봐야만 하는 정신질환자들은 점점 움츠러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직접 두 팔을 걷고 나선 환자들이 있다.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운영하는, 미디어를 통한 정신건강 인식개선 프로젝트 '당사자 인권톡(Talk) 10데시벨' 참여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10데시벨은 주의를 기울여야만 들을 수 있는 소리의 크기다. 우리 사회에서 10데시벨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자신들이 처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정신장애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10데시벨에서는 직접 정신장애인들이 대본부터 제작, 방송까지 맡는다.

지난달 28일 서울시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은 줌 웨비나를 통해 '2022년 정신건강 연구 심포지엄'을 열고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등과 함께 만든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1.0'(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김미현 10데시벨 1기 기획단원은 "10데시벨 활동을 하면서 인터뷰, 출판, 문화 캠페인을 벌이며 자신감과 자존감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정신질환 장애인과 환자들은 개인 차가 있겠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대다수"라고 호소했다.

김 단원은 "그 사람이 조현병이라고 해서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 그 사람만의 성향과 그 사람만의 고유한 성격, 지내온 환경 등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체 강력범죄 중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은 0.04% 밖에 안 되고, 이는 비장애인들의 범죄율보다 훨씬 낮다"며 "그런데 언론에서 조현병에 초점을 둔 보도가 너무 많아 '조현병 환자는 위험한 사람들'이라는 편견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디어가 편견을 걷어내고 정신질환자들이 자존감을 지키며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1.0' 발표

이날 심포지엄에서 공개된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은 언론들이 정신질환자들에 대해 쌓아온 편견의 벽을 낮출 최소한의 지침들을 담고 있다.

가이드라인엔 △정신질환 관련한 용어 사용에 유의할 것 △기사 제목에 정신질환 관련 언급을 최소화할 것 △정신질환과 범죄의 인과관계를 임의로 확정 짓지 말 것 △당사자 등 관련자의 의견을 포함하기 위해 노력할 것과 같은 원칙들이 적시됐다.

이에 따르면 '잔혹범죄', '참극', '난동', '흉기 테러', '시한폭탄' 등과 같은 표현은 정신질환자가 폭력적이거나 자기 통제가 어렵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또 '낙인찍혀', '꺼리는', '불명예스러운' 등과 같은 표현은 정신질환자가 사회적으로 소외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외에도 '정신병자 취급하다', '정신병적 범행', '정신병자 같은 행동' 등은 정신질환에 빗대어 심각성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지양해야 한다.

한국인들에게 정신건강의학과의 심리적 문턱은 여전히 높다. 지난해 발표된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평생 정신질환을 겪은 사람 중 10.1%, 최근 1년간 걸린 사람 중 단지 7%만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상담했다. 이는 캐나다(46.5%) 미국(43.1%) 등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다.

이런 치료 격차는 주로 제도적 불이익에 대한 우려, 사회적 낙인과 편견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화연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진흥원 교수는 빅데이터 전문기관과 2016년 1월~2019년 7월 네이버 블로그, 트위터 등에서 정신과와 연관된 단어를 포함하는 600만건의 글을 분석, "제도적 불이익으로 분류될 수 있는 단어(34%)가 가장 높은 빈도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20~30대 젊은 층의 경우 제도적 불이익이, 50대 이상에서는 사회적 인식이 정신과를 방문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 교수는 "정신질환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철폐하는 것이 치료 격차를 줄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입이며, 이는 젊은 층에서 더욱 큰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며 "50대 이상에서는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을 교정하기 위한 개입이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심포지엄에서 '정신건강 관련 한국 언론보도 내용분석' 내용을 발표한 황애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행정원은 "국민 10명 중 7명은 신문과 방송 등 대중매체에서 정신질환자 정보를 획득하는데, 정신질환자 범죄와 관련된 부정적이고 과학성과 객관성이 떨어지는 기사들이 이들에 대한 낙인을 유발해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6년 1월부터 2017년 9월까지 게재된 기사 중 정신건강과 관련된 단어를 포함하는 기사 1,011건을 분석한 결과, '자살'이라는 검색어가 가장 빈번히 나타났다. 또 부정적 논조의 기사가 긍정적 논조보다 2배 이상 많았다.

구성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정책지원본부장은 "언론의 특성을 고려해 협력적으로 기자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보도의 변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며 기자 대상 교육, 세미나, 우수보도상 등을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또 "기자들이 공감하면서도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희선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 당사자 가족대표단 대표는 "정신질환자 가족들의 소망은 정신질환이라는 병을 갖고 있지만, 작은 일이라도 능력에 맞게 하면서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정신질환에 대한 전문성, 당사자와의 소통을 강조하며 "건강한 사회를 위한 미디어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손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