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는 사용하지 않고도 사용할 방법이 많은 무기다. ‘선언적 사용’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상대에겐 존립의 위협이 된다. 그래서 냉전시기 핵무기는 의사소통과 협상의 목적으로 사용됐다. 베를린 봉쇄 때 미국은 유럽에 7,000기 이상 핵폭탄을 배치하고 전 세계적인 폭격기 훈련을 실시했다. 베를린 공수를 소련이 막을 경우 핵을 실은 폭격기들이 새까맣게 몰려갈 판이었다.
한국전쟁 때 정전협정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은 핵무기 발사가 가능한 롱톰 원자포 배치를 지시했다. 언론에는 롱톰이 핵폭탄을 발사하고 버섯구름이 피어나는 가상 사진이 배포됐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도 케네디 미 대통령은 핵 공격이 가능한 B-52 전략폭격기의 경계경보를 이용해 소련에 최후 결전 의지를 알렸다.
핵무기 위협을 활용한 것은 소련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에즈운하 분쟁 때 프랑스와 영국에 점령군을 철수시키지 않으면 파리와 런던을 핵으로 타격하겠다고 위협했다. 핵의 선언적 위협이 실제적 사용과는 다르다고 해도 당사국은 위협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위험은 현실적이다. 실제로 수에즈운하 위기 때 소련의 핵 위협은 프랑스와 이스라엘의 핵무장이란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
핵 전문가들은 그러나 핵무기 역할을 1기와 2기로 구분해 핵이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우려한다. 제1 핵 시대는 냉전 시기인데 당시 핵은 미국과 소련 양국 대립을 안정시키는 질서의 무기로 기능했다. 핵 공격을 받아도 상대를 확실하게 보복 파괴할 수 있는 상호확증파괴 전략을 양측이 인정한 덕분이다. 이런 논리에서 핵의 사용은 곧 공멸을 의미하면서 긴장 속 평화가 유지됐다.
제2 핵 시대는 냉전에서 승리한 미국이 핵의 역할을 감소시킨 시기다. 최근까지 포함한 이 시기는 핵의 망각시대로 불린다. 무엇보다 첨단무기로 세계를 압도한 미국은 이라크 이란 북한의 핵 확산 시도에 하이테크 무기와 미사일 방어체계로 대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핵 테러 공포까지 고조되면서 핵은 적을수록 좋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나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 대상이 아닌 전술핵무기 등의 전력을 증강시키며 미국과의 격차를 좁혀 갔다. 결국 트럼프 정부에서 미국도 뒤늦게 중러 양국에 대항할 핵 부활 시동을 걸게 된다.
냉전 때는 핵 위기가 발생해도 핵 전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사실상 핵 독점이 가능했기 때문에 핵 방아쇠를 쥐고 있던 미국과 소련이 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폴 브래큰 예일대 교수는 “오늘날 핵 전쟁으로 나아가는 길에는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주요국의 핵 독점이 붕괴하면서 핵 전쟁을 막고 평화를 추구하던 자동 차단기가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다. 현재 핵무기는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함께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 북한까지 9개국이 보유하고 있다. 더구나 핵 공격이 감지되면 즉시 보복 공격하는 미국 등의 ‘경보 즉시 발사(LOW)’ 같은 전략도 핵 무기 사용의 위험을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불거진 러시아의 핵 사용 위협은 핵무기는 사용할 수 없는 절대무기란 인식을 바꿔 놓고 있다. 수킬로톤(kt)에 불과한 저위력 전술핵무기의 등장도 핵 사용의 군사 전략상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보수 성향의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3월 다카하시 스기오 일본방위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의 말을 인용해 “핵의 제한적인 사용이 현실화한 시대, 핵 사용을 준비하지 않으면 핵이 억지력으로 기능하지 않게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했다. 제3 핵 시대라고 불러야 할 시점이 시작됐다는 주장이다.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전 의원은 “섣불리 일본 측 주장에 동조할 수 없으나 그런 시대가 출현한 것이라면 국내에도 전술핵 공유, 핵 무장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