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뚫려 좋아질 줄 알았는데... 원산도 인구는 왜 줄었을까

입력
2022.05.06 04:00
16면
<그 섬에 가다> 충남 보령시 원산도
해저터널 개통 5개월… 기대와 달리 부작용
관광객 쓰레기 천지… 양식장 '차떼기' 도둑 
곳곳 공사판… "주민 위한 촘촘한 개발 절실"
주민들 "다리 걷어내고 터널 다시 막았으면"

편집자주

3,348개의 섬을 가진 세계 4위 도서국가 한국. 그러나 대부분 섬은 인구 감소 때문에 지역사회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생존의 기로에서 변모해 가는 우리의 섬과 그 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거 참 이상하네… 이럴 리가 없을 텐데…”

올해 초 충남 보령시 원산도출장소에 부임한 백도현(58) 소장은 보고서 한 장을 앞에 놓고 한참 머리를 긁적였다. 2년 전 섬 북쪽으로 원산안면대교가 놓이고 지난해 11월엔 남쪽으로 해저터널까지 뚫려 섬 생활이 편해졌는데도 인구가 줄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감소분이라고 해봐야 16명(984→968명)에 불과하지만, 교통이 편해진 뒤 원산도 인구만큼은 늘 것이란 기대가 완벽하게 무너진 것이다.

“이거 자연 감소(사망) 때문이지?” (백 소장)

“아뇨. 지난 다섯 달 동안 부고는 많지 않았습니다.” (직원)

백 소장도 인구 감소 사실이 믿기지 않아, 말을 더 시키지 못했다. 보령해저터널(6.9㎞)은 일본 도쿄아쿠아라인(9.5㎞), 노르웨이 봄나피요르드(7.9㎞)·에이커선더(7.8㎞)·오슬로피요르드(7.2㎞)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긴 해저터널' 타이틀을 달고 개통했다. 터널 덕분에 1시간 반 걸리던 보령-태안 통행시간이 10분으로 줄어, 천혜의 환경을 보유한 원산도에 둥지를 트는 사람들이 증가할 줄로만 알았다.

터널 개통 다섯 달. 육지처럼 편하게 찾을 수 있어 '섬 아닌 섬'이 된 원산도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지난달 28일 원산도를 찾았다.

‘山’자를 닮은 안보 요충지

원산도(면적 7㎢)는 고려 시대부터 고만도라 불리다 20세기 들어 섬 모양이 뫼 산(山)자를 닮았다며 지금 이름으로 바뀌었다. 서쪽으로 다섯 개 봉우리를 가진 오봉산이 있고, 그중 최고 118m의 오로봉엔 봉수대 잔해가 있다. 조선 시대 외적이 침입하면 멀리 있는 외연도, 녹도의 신호를 받아 충청수영성(현재 보령시 오천면)으로 넘기는 역할을 하던 곳이다. 안보 요충지 역할을 하던 이곳에 올라서면 효자가 많이 나왔다는 효자도, 원산도와 해상 케이블카 연결이 추진되는 삽시도, 고대도, 장고도, 안면도 등이 한 폭의 그림처럼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그러나 낮은 곳으로 내려오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지금 원산도는 곳곳이 공사판이다. 차량 내비게이션 업데이트가 섬 개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77번 국도를 벗어나 내비게이션을 보면 차량이 도로도 없는 벌판을 달리고 있다. 말쑥하게 설치된 회전형 교차로, 교차로를 끼고 사방으로 뻗은 도로 양쪽으론 곳곳에서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백 소장은 “원산도 토지주 80%가 외지인”이라며 “터널이 뚫리면서 주말엔 섬이 몸살을 앓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고, 이에 따라 오랫동안 묵혀 있던 땅들도 본격 개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섬 사람들에겐 이 풍경이 낯설다. 그동안 개발과는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이다. 안쪽으로 들어앉은 동네 골목에서도 구경이 쉽지 않던 수입차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주말이면 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선다. 원산2리 주민 편부일(76)씨는 “말도 마라”며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그의 긴 이야기를 압축하면 "원산태안대교는 걷어내고, 보령터널은 다시 막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정리된다.

원산도는 휴일마다 몸살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대·소변을 아무데서나 봐서 지뢰밭을 만들고, 쓰레기는 또 어찌나 버리고 가는지,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란다. 평소대로 시속 30~40㎞로 차를 몰면 외지차량들이 뒤에서 빵빵거리고 난폭운전을 일삼아 섬 사람들 혈압만 올리고 있단다. 그의 긴긴 불평은 옆에 있던 부인이 한마디 거들고서야 멈춘다. “영감, 그래도 객지 나간 애들이 여기 오는데 1시간 줄어 좋다잖아요!”

녹을 받아 사는 처지에 편씨처럼 속시원히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이곳 환경미화원들 얼굴에도 불만이 묻어났다. 터널 개통 전 인구 1,000명의 원산도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는 월 10톤을 살짝 넘었지만, 최근엔 40톤으로 급증했다. 환경미화원 김태식(37)씨는 “수거 쓰레기 70% 이상이 주말에 섬을 찾은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것”이라고 말했다.

화장실과 쓰레기 분리수거대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탓에 섬을 찾는 관광객들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늘어난 방문객 수요를 못 따라잡고 편의시설이 부족해서 나타난 일종의 지체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지금 일은 11년 전 해저터널 착공 당시부터 예고됐던 것”이라며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가 준비를 소홀히 한 것이라 목소리를 높였다.

상수도 문제가 대표적이다. 해저터널이 완공되면서 상수도관이 섬까지 들어왔지만 정작 섬에선 관로가 준비 안 돼 주민들은 여전히 자체 지하수나 한국수자원공사가 해수담수화설비를 통해 공급하는 물로 생활하고 있다. 보령시 관계자는 “담수화 시설이 5곳 있지만, 관광객이 몰리는 주말엔 물 부족 사태를 겪는다”며 “별도 물차를 동원해 탱크 5곳에 물을 보충한다”고 말했다.

어두워지면 ‘도적’으로 변신

양식으로 먹고 사는 주민들은 외지 사람들의 '약탈'로 재산 피해를 입기도 한다.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곳은 어촌계. 박웅규(63) 원산3리 이장은 “섬으로 차량이 쉽게 드나들 수 있게 되면서, 양식장을 털어 '차떼기'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분노했다.

그와 함께 마을 한편으로 이동하니, 시퍼런 철제 문에 주먹만한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박 이장은 “이게 섬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도 양식장이 털리다보니 양식장으로 향하는 문을 아예 자물쇠로 걸어둔 것이다.

외부 차량의 양식장 접근을 막자, 최근엔 속칭 ‘독고다이’로 불리는 무등록 불법 선박이 등장했다. 초전항 인근에서 낚시 상점을 운영하는 신동원씨는 “양식장 경계 밖에 배를 대고 잠수사들이 한 번에 2,000만 원씩 해삼을 뜯어가기도 한다”며 “수중 추진기까지 동원하는 경우도 있고, 주민들이 약탈을 말리면 석궁으로 위협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원산도는 해루질(얕은 바다나 갯벌에서 어패류를 잡는 것)의 '핫스팟'이다. 새조개, 소라, 바지락, 해삼 등을 쉽게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이장은 “섬에 놀러온 사람들이 재미 삼아 한주먹씩 잡아가는 것은 문제 삼지도 않는다"며 “진짜 문제는 상자를 가져와 쓸어가는 해적 수준의 약탈”이라고 말했다. 보령해경 선촌출장소 관계자는 “주민들 신고가 더러 들어온다”며 “출동해보면 양식장 밖이라 제지하거나 처벌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 곤혹스럽다”고 전했다.

‘섬 개발’보다 촘촘해질 필요

양식장을 터는 것은 범죄지만, 양식장 바깥의 분쟁에 대해선 외지인 입장에선 인심이 박하다고 불평할 수 있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양식장 바깥 물산까지 채취해야 먹고살 수 있을 만큼, 주민들의 자생력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강제윤 섬연구소장은 “한국의 섬 정책은 다리 건설 등 주민 편의를 위한 물리적 환경 개선에 집중됐고, 주민들이 섬 자원을 활용해 자생하도록 만드는 지원에는 미흡했다”며 “원산도도 예외는 아니다”고 말했다. 불편한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 거액이 투입됐지만, 정작 육지와 연결돼도 주민들 불만이 가라앉지 않고 있어 촘촘한 개발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섬진흥원 관계자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함께 원산도 주민의 이야기를 직접 경청하면서 섬 발전 방향을 설계하고 있다”며 “원산도에서 드러난 다양한 문제점들이 다른 섬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행정안전부, 농림축산부, 해양수산부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산도=글 사진 정민승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