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동안 실험실에 갇혀있던 비글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 지 9일째 되던 날. 개들은 처음 본 사람에게도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동 장(켄넬) 밖으로 나오지 못하거나 얼음처럼 몸이 굳은 채 움직이지 못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여섯 마리는 중성화 수술을 마친 지 이틀째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활발했다. 손길을 건네자 다가와 냄새를 맡더니 손등을 핥기 시작했다. 실험견임을 알리는 문신을 보기 위해 귀를 만져도 싫은 내색 하나 없었다. 더 만져달라 얼굴과 몸을 들이밀기도 했다. 호기심 많고 사람을 좋아하는 영락없는 비글이었다.
지난달 28일 충남 논산시 벌곡면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 논산쉼터는 동물실험에 동원됐다 기증된 비글 26마리로 인해 활기가 넘쳤다. 비구협은 올해 3월과 지난달 20일 한 대학교 실험실과 대기업 연구소에서 2년간 실험에 사용됐던 비글 5마리, 21마리를 각각 기증 받았다. 대학교 실험실로부터 실험견을 기증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기업 연구소는 2020년 29마리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실험견을 비구협에 보냈다.
"4~5년 전 실험실서 나온 비글과 많이 달라요."
유영재 비구협 대표는 "4~5년 전만 해도 실험실서 나온 비글은 같은 공간을 빙글빙글 도는 '서클링' 증상을 보일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며 "최근 실험 비글은 전과 비교하면 트라우마가 크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비구협이 실험 비글을 처음 구조했던 2015년 당시 이들은 실험실에서 보통 6~7년가량을 지내고 밖으로 나왔지만 최근엔 기간이 2~3년으로 줄었다. 실험 종료 후 다음 실험에 사용하거나 다른 기관에 기증하는 사례가 줄고 있어서다. 또 실험실 내부에서 실험견 복지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곳도 늘고 있는 추세다.
올해 실험실에서 나온 비글들의 적응 속도는 빠른 편이다. 3월에 나온 비글 5마리는 이미 운동장을 함께 뛰어다니고 장난칠 정도로 성격이 빠르게 바뀌었다. 활동가들이 지나가면 달려 나와 반길 정도다. 실험 비글을 돌보는 손민관 비구협 운영팀장은 "처음에는 비명을 지르고 밥도 먹지 않는 개들도 있었다"며 "1주일 정도 지나자 사람을 따르고 다른 개들과 잘 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99.5%의 비글들은 실험실에서 생을 마감한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실험에 동원된 개는 2017년 1만3,487마리에서 2020년 1만267마리로 소폭 줄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1만 마리에 달한다. 이 가운데 매년 실험실 밖으로 나오는 수는 50여 마리 정도다.
비구협이 2015년부터 지금까지 구조한 실험견은 134마리. 또 다른 동물단체인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동행)이 다른 기업 실험실에서 지금까지 구조한 31마리를 포함해도 165마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가운데 40%가량은 국내가 아닌 미국으로 입양을 갔다. 국내에서 실험견을 입양하려는 가족을 찾기 어려워서다. 실험견 입양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배변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또 실험에 동원됐으니 건강상 어딘가 이상이 있을 거라는 선입견이 크다. 유영재 대표는 "실험견은 2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밥을 먹고 배변을 해왔기 때문에 배변을 가리지 못한다"며 "파양당하는 이유 중 하나로 배변 훈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건강상 문제가 없다"며 "연구자들이 실험 결과 모니터링을 위해서라도 체력적으로 강한 개들을 기른다"고 덧붙였다.
비구협은 국내에서 입양처를 찾지 못한 실험견을 미국 실험 동물 전문구조단체 비글프리덤프로젝트(BFP)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을 보내고 있다. 유 대표는 "미국에서는 실험 비글이 없어서 입양을 못 보낸다고 한다"며 "입양 경쟁률이 높다고 한다. 그 점은 부럽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번에 구조된 26마리의 첫 사회화 과정은 자는 곳과 배변하는 곳을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플라스틱으로 된 집에 푹신한 이불과 배변용 패드를 준비해 자는 곳과 배변하는 곳을 자연스럽게 알게 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이뤄지는 프로그램은 합사다. 실험견들은 각각 케이지에서 생활해 다른 개들과 지내는 법을 알지 못한다. 각자 습성을 파악해 싸우지 않을 개체들로 5~7마리씩 방을 배정했다.
이들은 앞으로 사회성 좋은 일반 비글과 합사를 통해 사회화를 배우게 된다. 실험 비글이 있는 곳에 발랄한 비글 1마리가 들어가 실험 비글의 잠자고 있던 본성을 깨우게 한다는 원리다. 또 매일 같은 활동가들을 보며 사람에 대한 신뢰를 쌓게 된다. 같은 자리를 도는 등 행동에 문제가 있으면 행동 전문 수의사에게 보내 행동교정과 약물 치료도 받는다. 입양 전 마지막 단계는 가정 임시보호다. 가정에서 지내면서 쉼터에서 파악하지 못한 특성을 파악하고 배변 교육을 받는다. 사회화 과정은 개체에 따라 짧게는 2개월에 끝나기도 하지만 보통 6개월 정도 걸린다.
유 대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실험견에 관심을 갖고 입양해주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입양자 역시 실험견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험견에게 처음으로 보호자라는 중심이 생깁니다. 보호자가 사라지면 불안해하는 분리불안이 잘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죠. 소음에 예민한 경향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을 위해 희생한 개들을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논산=고은경 애니로그랩장 scoopko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