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여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3일 시위를 재개했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전날 청문회에서 이동권 보장이나 탈시설 등 전장연 요구안에 미온적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이유다.
전장연은 이날 오전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 후보자의 청문회 답변은 부도수표인 약속어음"이라며 "오늘부터 기어서 지하철에 탈 것"이라고 선언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대표와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휠체어에서 내려 승강장을 기어 열차에 탑승하는 '오체투지 시위'를 진행했다. 이들은 동대입구역까지 갔다가 경복궁역으로 되돌아왔다. 시위 과정에서 지하철을 출발시켜 운행 지연을 막으려는 경찰과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지하철 시위와 중단을 반복해온 전장연은 지난달 21일 서울 지하철 2, 3호선에서 시위를 재개했다가 추 후보자의 전향적 답변을 기다리겠다며 같은 달 25일부터 시위를 잠정 중단한 바 있다.
전장연은 추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전장연 요구안에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경석 상임대표는 "추 후보자가 추진하겠다고 한 건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원뿐"이라며 "장애인평생교육법은 국회로 책임을 넘겼고, 장애인권리예산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이나 탈시설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전장연은 오체투지로 시위 방식을 바꿨다고도 했다. 장애인 현실을 표현하면서도 열차 지연과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판단에서다. 이형숙 회장은 "비참하게 바닥을 기는 것이 대한민국 장애인의 현실"이라며 "기재부가 예산을 통해 이동권, 교육권 등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장애인의 삶은 계속 비문명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지난달 21일 시위와는 탑승한 인원도 시간도 달랐다"며 "시민들에게 죄송하지만 잠깐의 시간과 최소한의 공간을 마련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이날 3호선 지하철 운행은 10분가량 지연됐다.
전장연은 기재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하는 이달 중순까진 시위를 이어갈 방침이다. 당분간 이날과 같은 장소와 방식으로 시위를 진행하다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엔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과 대통령 집무실 인근인 4·6호선 환승역 삼각지역 구간으로 시위 장소를 변경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