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동맥 골라서 타격한 러시아… 우크라, 에너지 대란에 발목 잡히나

입력
2022.05.03 04:30
연료 부족에  주유소 앞 차량 대기 늘어서
전투 수행·경제 회복 걸림돌…식량난 악화
항구 봉쇄로 공급 차질… 연료대란 장기화

“기다리는 일쯤이야 괜찮습니다. 우리는 지금 전쟁을 하고 있잖아요.”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르비우에서 가장 큰 주유소를 찾은 전직 공무원 로만 야레마는 자동차에 휘발유를 채우기 위해 1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뒤로는 차량 50여 대가 더 늘어서 있었다. 한 번에 최대 10ℓ로 구매 제한을 두고 있지만, 이렇게 연료를 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아예 재고 물량이 떨어져 연료를 못 파는 주유소도 적지 않다. 제2도시 하르키우에선 경찰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주유소 매니저 마리아는 “연료 공급 탱크가 이틀 전 도착했어야 하는데 아직 오지 않았다”며 “전쟁이 터진 이후 석유 공급이 끊긴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에너지 대란까지 직면했다. 최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정유시설과 석유 저장시설, 주유소 등을 집중 공격해 파괴한 탓이다. 경제 동맥이 끊기면 일상 회복과 경제 활동에 차질이 빚어지는 건 물론, 자칫 동부 돈바스 전투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우려가 크다. 러시아가 다분히 의도했던 결과다. 키이우 시당국은 “영토 방어를 위해서는 에너지 비축이 필요하다”며 시민들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휘발유 가격 상승을 막기 위해 세금도 일시 폐지했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곡식도 석유를 먹고 자란다. 농기계 없이는 농작물을 심거나 수확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에너지 대란이 가뜩이나 심각한 전 세계 식량난을 더욱 악화시킬 거라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5대 밀 생산국이며 전 세계 해바라기씨유 시장점유율 50%를 차지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3월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농기업 1,300곳 중에 올봄 작물을 심는 데 필요한 농기구를 가동하기에 충분한 연료를 보유한 회사는 5분의 1에 불과했다. 가을걷이할 곡식이 태부족일 거란 얘기다. 당장 여름철 밀 수확도 걱정이다. 보고서는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아나 많은 지역에서 식량 접근, 생산 및 전반적인 식량 가용성이 악화했다”며 “농업 생산과 식량 공급망 기능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2022년과 2023년 식량 위기 해소에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국제유가와 국제 곡물가격의 고공행진이 상당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연료 부족 사태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가 침공하기 이전 우크라이나는 휘발유와 경유 4분의 3을 러시아와 벨라루스에서 수입했기 때문이다. 적으로 돌아선 두 나라를 대신해 유럽 다른 나라에서 석유를 공급받으려고 해도 러시아 해군이 흑해 연안에서 항구를 봉쇄한 탓에 유조선이 입항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폴란드와 루마니아를 통해 육로로 들여오려는 데도 물류 장애가 있다. 나탈리아 카체르부치코우스카 우크라이나 의회 에너지위원회 의원은 “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려면 철도와 도로 시스템을 폴란드 국경을 넘어 발트해 연안까지 확장하는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김표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