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BTS RM 자필로 본 성격은…" 글씨 탐구하는 변호사

입력
2022.05.02 17:05
24면
'국내 1호' 필적학자
김정은 트럼프 글씨 분석, 외신도 의견 구해
21년을 검찰에서 강력범 주로 상대 
"진술서 필체 왜 특이할까" 호기심
독립운동가 618명 친필 수집 
"글씨체 바꾸면, 내면도 달라져"

구본진(57) 변호사의 '낮과 밤'은 180도 다르다. 담당 사건에서 해방되고 퇴근하면 그는 '필적 탐정'이 된다. 글씨체를 연구한 지 올해로 16년, 구 변호사는 안팎으로 입소문도 났다. 국방부는 2017년 구 변호사에게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글씨 분석을 요청했고, 영국의 로이터통신도 그에게 전문가 의견을 구했다. 미국과 영국의 필적학회 회원인 구 변호사는 국내 1호 필적학자다. 필적 감정이 서로 다른 글씨를 두고 동일인의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일이라면, 필적학은 글씨로 사람의 성격 등 특성을 파악한다.


필체로 본 '계곡 살인' 피의자 이은해

"자음과 모음 즉 글자의 구성성분 사이의 간격이 좁아요. 타인과의 소통이 잘 안되고, 자기 생각대로만 하려고 하죠. 글자 간격과 가울기 등이 들쭉날쭉한데, 충동성 있는 사람의 필체에서도 드러나는 특징이죠." 지난주 서울 중구 한국일보를 찾은 구 변호사에게 계곡 살인 사건 피의자 이은해가 쓴 것으로 알려진 엽서 사진을 보여주고 받은 의견이다.


긴 가로선, 인내심의 상징...'과학'으로 조명받는 필적학

언뜻 비과학적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글씨체엔 '지문'이 곳곳에 찍혀 있다. 하나의 글씨에도 많은 정보가 담겨, 영미 필적학자들은 't' 자만 분석해 따로 책을 내기도 한다. "대문자 T를 가로선과 세로선이 닿지 않고 간격을 벌어지게 쓸수록 이상이 높은 경향이 있어요. 그만큼 가로선을 높게 써, 세로선이 닿지 않는 거니까요. 가로선은 인내심의 증표죠. 길게 쓰려면 끝까지 선을 그어야 하잖아요." 구 변호사가 낸 최근작인 '부자의 글씨'(다산북스)를 보면,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는 T자의 가로선을 세로에 비해 두 배 길게 쓰며, 가로선과 세로선 사이 간격도 넓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쓴 T자에서도 같은 특성이 도드라진다. 꿈이 컸고, 인내력이 강한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이 필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런 필적학이 '과학'으로 조명받기 시작한 계기는 2001년 미국에서 벌어진 '탄저균 테러' 때였다. FBI는 탄저균에 오염된 편지를 필적학으로 분석, 용의자 수사망을 좁혔다.


"글씨로 사건 실체 파악 도움"

구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장,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을 거쳐 21년을 검사로 일했다. 강력범을 주로 상대했다. 범죄자들의 자술서를 오랫동안 들여다보면서 글씨의 특이성을 발견했고, 필적에 관심을 두게 됐다. 국내는 필적학의 불모지라 영어, 중국어, 독일어 등으로 된 원서를 해외에서 들여와 혼자 공부했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그는 유명한 이들의 '글씨'를 사 모았다. 그의 창고엔 안창호 등 독립운동가 618명과 친일파 239명의 친필 문서 1,280여 점이 보관돼 있다. 구 변호사는 "글씨 연구를 하다 보니 계약서, 메모 등에 친필이 있으면 유심히 보게 된다"며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분석하게 되고,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국내 미술법 박사 1호... 검찰서 연극 기법 강연한 이유

율사는 호기심이 많았다. 구 변호사는 2010년 미술법으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1호였다. 그는 "출근해서 형법, 형사소송법을 계속 접해야 하니 퇴근하고 나선 다른 법을 공부하고 싶었다"며 "미술을 좋아했고 그래서 관련 법을 공부했다"고 말했다. 구 변호사는 조영남의 '그림 대작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아내 그가 붓을 꺾지 않게 도왔다. 구 변호사는 2007년 검찰에서 '연극 강사'로 불렸다. 배심재판 도입을 예상해 검사들에게 화법과 연극 기법을 가르쳤을 때였다. 당시 검찰 조직에서 그의 행보는 파격이었다. 소동 후 2년 뒤, 국내엔 배심재판이 도입됐다.


글씨를 통한 치유와 삶의 변화

구 변호사는 '필적은 말한다'(2009)를 시작으로 총 네 권의 필적학책을 냈다. 하지만, 글씨와 우리네 삶은 멀어져가는 추세다.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 답안을 일부 수기로 작성하기는 하지만, 사회로 나오면 그들의 펜은 컴퓨터 자판으로 대체된다. 필체의 흔적이 사라지는 시대, 왜 글씨체를 고민해야 할까. 구 변호사는 글씨를 통한 치유를 얘기했다. "필체를 바꾸면 인생도 바뀔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사람의 외면은 바꾸기 쉽지만, 내면은 그렇지 않죠. 어려서 서예를 배우면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된다는 데 대부분의 사람이 부정하지 않듯, 글씨체를 바꾸면 내면도 바뀔 수 있습니다. 인내심을 키우고 싶으면 가로선을 길게 써보세요. 제 책과 유튜브를 본 분들이 '처음엔 믿지 않았는데 효과가 있다'며 답도 많이 보내주시고요." 구 변호사의 사무실엔 지난해 탱자가 배달됐다. 독자가 저자에게 보낸 선물이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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