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戰 사이버戰 포격戰… 확대되는 우크라 전쟁

입력
2022.04.28 19:04
17면
러시아 가스관 봉쇄에 EU "대체분 수급"
의존도 높은 탓 벌써부터 단일대오 균열
러 해커, 두 달간 우크라 기관 37회 해킹
NYT "전쟁, 국경 넘어 번질 두려움 커져"

우크라이나 전쟁의 불길이 국경을 초월해 옮겨붙고 있다. 러시아가 자원을 무기 삼아 유럽에 공급을 중단하면서 에너지전(戰)으로 전선이 확대됐고, 사이버 공간에서도 정보전쟁이 확산하는 등 전쟁의 양상이 변주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총성 없는 전쟁’까지 비화하며 전장(戰場)을 넓히는 셈이다.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국경을 넘어 더욱 번질 거라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지역을 둘러싸고 점령ㆍ사수를 위한 지상전이 계속되는 상황에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 더해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당장 에너지 자원을 두고 서방과 러시아의 팽팽한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이날 유럽연합(EU)은 러시아산(産)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다. 전날 러시아가 폴란드와 불가리아로 향하는 가스관을 봉쇄하며 에너지 무기화 방침을 노골화하자 강경 대응에 나선 것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러시아가 가스를 협박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현재 EU 주변국에서 대체분을 수급 중”이라고 밝혔다. 미 에너지부는 자국 에너지기업 두 곳을 대상으로 가스 수출 규모를 하루 1,415만㎥가량 추가 허용하면서 구원투수로 나섰다.

서방을 옥죄려는 러시아의 의도가 통했는지, 에너지 수급을 둘러싼 분열 움직임도 즉각 나타났다. 러시아에서 천연가스의 85%, 석유의 65%를 공급받는 헝가리는 루블화로 결제하라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요구를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 내 최소 10개 기업이 러시아 국영은행 가스프롬방크에 계좌를 개설했고, 4개 기업은 루블화로 대금까지 지불했다는 보도(블룸버그통신)도 나왔다. 러시아가 불을 댕긴 에너지전이 장기화할 경우 유럽의 반(反)러시아 단일대오가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온라인 네트워크에 침투, ‘악성 코드’를 심는 사이버 공격은 위력을 키우고 있다. 이날 마이크로소프트(MS)는 러시아 해커들이 우크라이나 핵심 기반시설과 주요 기관을 상대로 해킹에 나섰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냈다. 해커들은 전쟁 개시 후 이달 8일까지 37차례에 걸쳐 핵심 데이터를 파괴하거나 악성 소프트웨어를 뿌리는 방식으로 전선을 형성했다. 사이버 전장에서의 정보 부재ㆍ오류가 물리적 피해로까지 이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전쟁 양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셈이다. 실제 지난달 4일 러시아 해커들은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빈니차의 정부 네트워크에 침입했는데, 이틀 뒤 빈니차 공항은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쑥대밭이 됐다.

여기에 총성과 포성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몰도바와 러시아까지 넘나들고 있다. 이날 우크라이나 국경과 인접한 러시아 서부 도시 벨고로드에서는 무기 창고에 폭발음과 함께 화재가 보고됐다. 25일 러시아 국경도시 브랸스크 유류저장고에서 화재가 발생한 지 이틀 만이다. 폭발 원인은 불분명하지만, 현지에서는 우크라이나군의 헬기 공격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러시아의 업보(karma)” “빚은 곧 갚아져야만 한다”는 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벨고로드 폭발과 비슷한 시간, 러시아 남서부 보로네시에선 우크라이나군이 띄운 것으로 추정되는 무인 정찰기도 발견됐다는 러시아 현지 매체의 보도가 나온 점을 감안하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에 직접 보복 공격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미 우크라이나 인접국 몰도바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러시아가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한 트란스니스트리아를 해방시키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뒤 정부 건물 등에 잇따라 포탄이 떨어지고 있다. 대테러 전문가인 세스 존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지금 전쟁 확대의 위험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허경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