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에서 보유한 액화천연가스(LNG) 물량 일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여파로 LNG 대란을 겪고 있는 유럽에 제공된다. 그동안 수급 상황에 따라 인근 국가인 중국이나 일본과 LNG 물량을 상호 교류했던 전례는 있었지만 이번처럼 전시 상황에 유럽으로 보낸 경우는 이례적인 사례다. 그만큼 현재 유럽 내 LNG 수급난은 심각하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에 대해 "동절기가 지나면서 국내 LNG 수급 상황에 여유가 생겼다"며 당장 큰 문제는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하지만 갈수록 확대일로인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에 대한 대비책 또한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최근 우리 정부는 이미 확보한 LNG를 유럽에 일부 제공키로 결정했다. 구체적인 방식은 계약된 LNG를 교환하는 '스와프' 형태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에 유럽에 LNG를 제공한 만큼, 향후 유럽국가들로부터 LNG를 돌려받게 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종의 ‘LNG 품앗이’인 셈이다.
사실 유럽에 대한 LNG 대여 압박은 약 2개월 전부터 제기돼 왔다. 지난 2월 미국 정부로부터 유럽에 대한 LNG 지원 여부에 대한 의사 타진이 전달됐지만 당시 우리 정부는 동절기 국내 수급 사정을 이유로 어렵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동절기가 지나고 국내 수급 사정이 나아지면서 국제사회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공급 시기나 물량에 대해서는 다른 LNG 계약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며 “국내 수급이나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는 수준에서 일부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전날 로이터통신에서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전한 소식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일단 이번 여름까지 LNG 물량 일부를 유럽에 제공할 예정이다. 이미 적신호가 켜진 유럽 내 LNG 수급 상황이 고려된 결정으로 읽힌다. 최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산 가스를 금수해야 한다"고 나선 유럽연합(EU) 반(反)러 움직임에 대해 러시아에선 자국 통화인 루블화 결제 거부를 이유로 폴란드와 불가리아 등 2개국에 대해 LNG 공급 중단으로 맞선 상태다.
전문가들은 당장 국내 수급을 걱정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4~6월이 도시가스 수요가 가장 낮고, 태양광 풍력 발전은 늘어나는 시기다”며 “(동절기와 마찬가지로) 수요가 적은 하절기에도 일정량의 LNG를 도입해 여름엔 저장 탱크는 물론 배관까지 활용해 보관을 해야 하는데, 이런 점들 감안하면 오히려 이 기간 동안 유럽에 대여해주는 게 합리적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다만, 전쟁과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가스난이 번질 가능성에 대한 '플랜B'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 LNG 수요가 늘어나는 10월까지 전쟁이 지속되고 러시아의 무기화가 계속된다면 수급난이 세계적으로 번져 빌려준 우리나 돌려줘야 하는 유럽국가들 모두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순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