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은 각국 지도자들에게 판단의 시험대였다. 팬데믹의 과학적 근거는 같을진대 왜 나라별로 방역과 백신 정책의 판단은 달랐을까. 1,500만 명에 이르는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의 분포도는 국가별로 큰 차이가 있다.
잘못된 결정은 편향에서 비롯되곤 한다. 가령 백신에 대한 맹신, 또는 불신으로 나쁜 판단을 할 수 있다. 물론 상황을 오판하는 이유에 편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 간 생각의 편차가 크고 의견 일치가 늦어지면서 판단 오류가 생기는 식의 여러 잡음이 발생할 수 있다.
신간 '노이즈: 생각의 잡음'은 인간의 판단 오류 원인을 편향(bias)과 잡음(noise)의 두 가지로 나눠 잡음을 본격적으로 규명한 책이다. 그간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편향성 문제를 지적한 책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가운데 '노이즈'는 인간의 판단에서 편향 못지않게 잡음이 문제가 된다고 주장하며 잡음을 최소화할 해법을 모색한 실용서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생각에 관한 생각'(2012)의 저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전작에서처럼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심리와 본성에 주목했다. 집필에는 행동경제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카너먼 외에도 의사결정에 대한 연구를 오랫동안 해 온 올리비에 시보니, '넛지'의 공저자인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이 함께 참여했다.
저자들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고 겉으로 잘 드러나는 편향과 달리 잡음은 잘 보이지 않고 문제의 핵심에서 임의적으로 분산돼 있다고 봤다. 형사사법제도, 의료제도, 비즈니스,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숨겨진 잡음이 발견된다. 흑인 피고에게 불균형하게 가혹한 판결이 내려진다면 편향이 작용한 것이지만 판사가 지역 축구팀이 경기에서 승리한 다음날보다 패배한 다음날 더 가혹한 판결을 내린다면 이는 잡음 탓이다.
말하자면 잡음은 판단 시점에 의도치 않게 발생하는 무작위 변동성 요인이다. 책에서는 '변산성(variability)'으로 표현된다. 비슷한 횡령 사건을 저지른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다른 한 사람은 징역 117일을 선고받았다면 이는 판사 개개인의 다양성에서 비롯된 잡음 때문이다. 실외 온도와 피로감 등도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잡음이 될 수 있다. 저자들은 조직 내부 논의에서 잡음이 핵심적으로 다뤄지는 경우는 드물지만 잡음이 편향에 비해 알아차리기 어렵고 작은 문제처럼 보인다고 해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판단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잡음이 있고, 그 잡음은 생각보다 많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저자들이 잡음의 적정 수준이 '0'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의견의 다양성에서 비롯된 잡음은 시장 형성과 혁신으로 이어지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불공정 논의로 이어질 수 있는 '제도 잡음'이다. 제도 잡음은 이상적 상황이라면 똑같아야 하는 판단에 뜻하지 않게 끼어드는 잡음이다. 책은 응급실 의사, 형량을 선고하는 판사, 보험회사의 보험심사역 등 전문가들이 판단을 내리는 조직에서 목격되는 제도 잡음을 설명하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저자들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편향을 제거하는 것을 직접 치료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잡음을 줄이는 일을 예방적 위생에 비유한다. 그러면서 잡음이 발생하기 전에 방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알고리즘 활용을 권장하고, 직무를 감찰하고 회계 자료를 감사하듯 '잡음 감사'를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
책은 전문적 판단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걸려 있는 제도 잡음 문제를 강조함으로써 소수 지도자 맹신의 위험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다양한 연구 자료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편향과 잡음의 개념이 다소 뒤섞이는 느낌도 없지 않다. 하지만 소수 지도자의 판단으로 많은 상황이 뒤바뀌고 흔들리고 있는 팬데믹 국면인 까닭에 공감할 대목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