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나서 처음 맞는 주말, 서울을 비롯한 전국 시내는 밤늦게까지 들썩였다. 문 닫기 직전까지 몰리면서도 가까스로 버틴 ‘살아남은’ 자영업자는 모처럼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몸에 좀이 쑤셔도 밖에 나갈 수가 없어서 집에서 맥주와 소주를 마시던 사람도 오랜만에 바깥에서 지인과 어울려 알코올에 몸을 적실 수 있었다.
어떤 과학자는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틀림없이 다음 질문을 던졌을 테다. ‘인간은 왜 저렇게 알코올(술)에 집착할까?’ 알다시피 사람마다 다르지만, 인간은 아주 효과적으로 독성 물질인 (에틸) 알코올을 몸에서 대사하는 능력을 갖췄다. 심지어, 술을 자주 마시면 제한적이나마 알코올 대사 능력이 늘어나기도 한다.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두면, 분명히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어떤 이유로 알코올과 친해졌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인간은 알코올과 친구가 된 것일까? 실제로, 이런 흥미로운 질문에 대담한 가설로 답했던 과학자가 있다. 그는 자신의 가설을 공유하고자 제목만 들어도 웃음이 나오는 책도 펴냈다. 로버트 더들리의 '술 취한 원숭이'(궁리 발행).
오랫동안 영장류를 연구해 온 더들리의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을 살펴보자. 술은 양조장이 아닌 열대우림 같은 자연환경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발효 과정에서 효모가 과일에 포함된 당을 먹고서 끊임없이 알코올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렇게 만들어진 알코올은 과일 입장에서도 이득이다.
우선, 알코올은 다른 세균의 공격으로부터 과일을 지켜준다(알코올 솜으로 소독하는 일을 생각해 보라). 이렇게 세균으로부터 보호를 받은 과일은 부패 속도가 늦어진다. 알코올의 또 다른 긍정적인 기능도 있다. 발효가 가능하려면 과일에 당이 충분해야 한다. 알코올은 과일에 당이 풍부함을 증명하는 표시다. 씨를 퍼트리는 새나 곤충은 달콤한 과일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인간과 그 조상은 어떨까? 과일은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오랫동안 가장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었다. 약 550만~700만 년 전에 공통 조상으로부터 인간과 갈라선 그래서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침팬지 식단의 75%는 과일이다. 이렇게 오랜 수렵 채집 기간에 인류의 조상에게 잘 익은 과일을 찾아서 포식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운이 좋은 인류의 조상 손에 들어간 잘 익은 야생 과일 가운데 상당수는 적당히 발효가 진행되어 알코올을 포함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과일을 먹으면서, 인류의 조상은 자연스럽게 알코올을 섭취하게 되었다. 그렇게 섭취한 알코올을 몸에서 대사하는(독성 물질을 빨리 제거하는) 능력이 뛰어날수록 생존 가능성이 커졌음은 물론이다.
더들리는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인류가 알코올 대사 능력이 생겼고, 나아가서 알코올 선호 경향도 강해졌으리라 여긴다. '술 취한 원숭이'에서 '술 취한 사피엔스'로 진화한 것이다. '술 취한 원숭이'는 이 같은 더들리의 가설을 종합해 놓은 책이다. 그런데, 실제로 시간이 지날수록 이 가설은 검증을 이겨내고 있다.
크리스티나 캠벨 등이 파나마의 한 섬에 서식하는 원숭이가 먹다가 버린 과일을 모아서 분석했더니 알코올 농도가 1~2% 정도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렇게 알코올이 함유된 과일을 즐겨 먹은 탓에 이 원숭이의 소변에서는 알코올의 2차 대사 물질(아세테이트)까지 발견되었다. 심지어 이 원숭이가 좋아하는 과일 가운데는 알코올 농도 7%짜리도 있었다!
노파심에 한 마디만 덧붙이자.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알코올과 친했다고 '부어라 마셔라' 술에 중독되는 일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술 취한 원숭이'의 저자 더들리의 가족사가 그렇다. 더들리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떴다. 더들리가 알코올에 집착하는 과학자가 된 사정도 바로 이런 아픈 가족사 때문이었다.
과학책 초심자 권유 지수: ★★★ (별 다섯 개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