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은 없었다. 국민의 눈높이를 말씀하시는데 국민의 눈높이가 도덕과 윤리의 잣대라면 저는 거기로부터도 떳떳하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1일 인사청문회준비단 사무실 출근길에서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하면서 한 말이다. 정 후보자의 코멘트를 바탕으로 작성돼 쏟아지는 기사들을 보며 잠깐 혼란스러웠다. 설마, 저렇게 자신 있게 떳떳하다고 하지는 않았겠지. 내 생각이 틀렸다. 정 후보자는 법적으로는 물론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도덕적, 윤리적 잣대로도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며 쐐기까지 박았다.
이런 해명이 나오게 된 맥락이 있긴 하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정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 "부정의 팩트가 있어야 한다"며 불법성 여부를 기준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여론이 싸늘해지고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자 "법적인 책임을 넘어서 도덕성까지, 한 차원 높은 차원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은 사안이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자 정 후보자가 재차 자신의 의혹 역시 '국민의 눈높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항변한 것이다.
정 후보자 자녀들은 아빠가 실세인 병원에서 봉사 활동을 했고 그 경력이 아빠가 실세인 병원의 의대 편입에 활용됐다. 또한 아빠의 동료 교수들이 직접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이건 이미 확인된 '팩트'다.
이런데도 도덕과 윤리의 잣대에서 떳떳하고 한 점 부끄럼이 없다고 할 수 있나.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다. 후보자와 국민의 눈높이가 다르다는 거다.
최근에는 정 후보자 딸이 경북대에서 의대 편입에 필요한 과목을 계절학기로 수강한 후 편입 전형을 치렀고 의대로 편입한 뒤에는 병원장이자 교수로 있던 아버지 수업을 수강했다는 추가 의혹이 불거졌다. 경북대 지침에 따르면 교원은 자녀가 본인 강의를 수강할 경우 학교에 신고해야 하지만 정 후보자는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정 후보자는 "부모가 속한 학교나 회사, 단체 등에 자녀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우리 사회의 사회적 규범이 없는 상태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자녀들의 의대 편입 시점이 수십 년 전도 아닌 4~5년 전이라는 걸 생각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공직자가 가져야 할 이해충돌 회피에 대한 인식이 빈곤하다는 걸 스스로 고백한 발언이나 다름없다.
최근 코로나19 이후 벌어진 학습격차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서울의 대표적 교육소외 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중학교 교사와 인터뷰를 했다.
18년 차 교사인 그는 "교실 안에서 학생들 간 사회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크게 느껴진다"고 우려했다. 이어 "잘사는 학생과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갈라지는 현실의 벽도 갈수록 두꺼워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정 후보자가 보건복지부 수장이 될 만한 역량을 갖췄는지는 앞으로 청문회를 통해 드러날 것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각종 의혹 가운데 불법, 위법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는 장관 임명을 떠나 필요하다면 감사·수사로 밝혀야 한다. 더불어 정 후보자가 어떤 눈높이를 갖고 있는지도 중요한 검증 영역으로 삼아야 한다. 눈높이가 다르면 보이는 세상도 달라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