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3m 원시적 돌탑들... 명상의 시공간을 걷다

입력
2022.04.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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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현대미술가 우고 론디노네 개인전
국제갤러리 서울서 '수녀와 수도승' 5점 
부산에선 수채화 '매티턱' 연작 선봬

키 3m의 거인이 도심 한복판에 출현했다. 하나도 아닌 다섯이 우뚝하니 서 있는 이것은 스위스 현대미술가 우고 론디노네(58)의 조각상 '수녀(nuns)와 수도승(monks)'. 거대한 돌덩이 위에 보다 작은 돌을 올린 모양새가 영락없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 거칠게 깎인 작품 표면은 꼭 수도승의 풍성한 옷자락 같아서 두 팔 벌려 품어 안으려는 듯하다.

우고 론디노네의 수녀와 수도승 5점은 그의 개인전 '넌스 앤드 몽크스 바이 더 씨(nuns and monks by the sea)'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첫 단추를 꿴 건 2013년 미국 뉴욕 록펠러센터 광장에서 '휴먼 네이처'라는 이름으로 첫선을 보인 거대한 청석(청회색 사암) 조각 작업이었다. 이 기념비적 전시는 2016년 라스베이거스 외곽 네바다 사막에서 돌탑 형상의 작품 '세븐 매직 마운틴스'로 다시 전시됐다. 최근 미술 애호가로 유명한 방탄소년단 RM의 방문으로 또 한 번 화제를 몰았던 그곳이다.



이렇듯 10년 넘게 우고 론디노네는 돌에 천착해왔다. 세상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 시간을 축적한 재료라는 점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번 전시는 앞선 전시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돌을 활용하는 방식에선 한 발 더 나아갔다. 원하는 크기와 디테일을 충분히 표현하기 위해 돌이 아닌 청동으로 선보인 것이다. 이번 작품은 작은 석회암을 3D 스캔하고 확대한 후 청동으로 주물을 뜨고 색을 입혀 만드는 과정을 거쳐 꼬박 2년 만에 완성됐다.

그러면서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작품이 놓인 공간에도 특히 신경 썼다.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얗게 칠했던 화이트큐브의 기존 전시장 바닥과 벽, 천장에 시멘트를 발라 벽과 바닥의 경계를 최대한 없앤 것이다. 자연광이 들지 않게 유리문에는 자외선 차단 필터도 붙였다. 언제 와서 작품을 보더라도 일관되도록 한 것이다.



그의 수채화 '매티턱' 연작 17점을 선보이는 국제갤러리 부산점 공간 역시 전면 유리창을 자외선 차단 필터로 감싸 마치 구름에 그늘이 진 듯 연출했다. 부산 수영구 복합문화공간 F1963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우고 론디노네가 뉴욕 롱아일랜드 매티턱에 있는 집에서 본 노을을 그린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다른 공간에서 동시에 작품을 선보이는 건 그가 자주 취하는 전시 방법이다. '매티턱'은 해가 질 때 바다와 하늘, 해라는 3가지 소재를 오로지 3개의 색으로만 묘사했다.

단순한 형상만큼 직관적으로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게 우고 론디노네 작품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마음이 시끄러울 땐 전시장을 찾아 수녀와 수도승 사이를 걸어보자. 탑돌이를 하듯 천천히 돌다보면 마음의 평안을 되찾게 될 것이다. 수도승이 신과 인간을 잇는 매개 역할을 했듯 번화한 도시 공간에 놓인 자신의 원시적 돌탑이 현대인에게 명상의 시공간이 되길 바라는 게 작가의 뜻일 게다. 전시는 5월 15일까지 이어진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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