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의 수수께끼

입력
2022.04.26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히틀러는 만(卍)자 문양을 뒤집은 '하켄크로이츠'를 나치 독일의 상징으로 삼았다. 이 문양 자체는 힌두교, 불교는 물론 기독교 문화에서도 길상(吉祥)이나 힘과 질서, 평화라는 의미로 오랫동안 사용해온 것이다. 하지만 트로이 유적에서 이 표식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히틀러는 여기에 고대 인도유럽어족에 뿌리를 둔 아리아인의 우월성을 담으려고 했다. 최초 나치당(독일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 당기에 새겨진 문양은 그대로 1935년 독일 국기가 된다.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 때 마치 하켄크로이츠를 연상케 하듯 탱크 등 무기에 'Z' 표식을 해 화제다. 우크라이나 분석에 따르면 이 기호는 다양한 러시아군을 식별하는 기호의 하나다. 'Z'는 동부군관구 소속 연방군이고 사각형 안에 Z 표식 한 것은 크림반도 연방군을 뜻한다. 이외에도 'O' 'X' 'V' 'A' 등 다른 기호도 있는데 각각 벨라루스에서 온 병력, 체첸 부대, 해병대, 특수부대라고 한다. 그중 유독 'Z'는 침략을 정당화하는 선전이나 지지의 상징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 도대체 러시아어 자모에 없는 'Z'가 어디에서 온 것인가를 두고 해석도 분분하다. 러시아쪽 선전물에서 'Z' 기호는 '~을 위하여(За)'라는 어구와 자주 같이 사용된다. 머리글자 'З'은 로마자 'Z'에 해당한다. 2차 대전에서 독일을 물리친 올해 5월 9일 전승기념일이 77주년을 맞는데 '7' 두 개를 위아래로 이어 놓은 디자인이라는 해석도 있다.

□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앞세워 전쟁을 일으키고 유대인 학살을 벌인 독일에서 이 문양 사용이 금지된 것처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Z' 사용 금지가 확산되고 있다. 동유럽 여러 국가는 물론이고 러시아와 군사동맹인 키르기스스탄 등에서도 공공장소에서 'Z' 표식 사용이 금지됐다. 삼성은 발트 3국 수출 때 갤럭시 Z 플립, 폴더의 'Z' 표시를 지웠다. 게임 '오버워치'의 러시아 캐릭터 자리야 스킨에 있던 'Z'도 사라졌다. 러시아에서만 뜨거운 'Z' 열기를 보며 나치에 열광하던 독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김범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