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외수, 향년 76세로 별세… '영원한 기인' 잠들다

입력
2022.04.25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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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기인’ 이외수 소설가가 투병 끝에 25일 별세했다. 향년 76세.

1946년 경남 함양에서 출생한 고인은 1964년 춘천교대에 입학했다가 1972년 중퇴했다. 같은 해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견습 어린이들’이 당선됐고 1975년 ‘세대’지에 중편 ‘훈장’으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한다. 강원일보 기자와 학원 강사 등의 일을 거쳐 1979년부터 40년 넘게 전업작가로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 ‘들개’, ‘칼’, ‘벽오금학도’, ‘황금비늘’, ‘괴물’, ‘장외인간’을 비롯해 소설집 ‘겨울나기’, ‘장수하늘소’, 산문집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 ‘감성사전’, ‘하악하악’, ‘청춘불패’ 등 수십 권의 책을 내며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

그중에서도 고인을 단숨에 인기 작가 반열에 들어서게 한 작품은 1978년 출간한 첫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이다. 가족의 몰락과 도덕의 상실로 현실감을 잃어버린 청년의 인생을 섬세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20년간 70만부가 넘게 팔리며 ‘이외수 마니아’라는 독자군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김현 문학평론가는 이 작품에 대해 “섬세한 감수성과 뛰어난 상상력이 충격적”이라고 평했다. ‘꿈꾸는 식물’ 이후 근작까지 모든 작품이 40~50만부가 팔리며 국내에선 보기 드문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머리와 수염이 제멋대로 자라도록 둔 외양에 개집에서 잠을 자고 지붕 위에서 술을 마시는 등의 기행, ‘염력’이나 ‘초현실세계’ 등의 문학적 주제가 더해지면서 고인에게는 ‘천재’ ‘광인’ ‘기인’ 등의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여기에 2000년대 중반부터 시트콤과 TV광고,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졌고 특히 2010년대 이후에는 활발한 트위터 활동을 통해 170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트위터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했다.

고인은 트위터뿐만 아니라 개인 홈페이지와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온라인 커뮤니티를 매개로 독자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온라인 논객'으로도 활동했다. 2008년 출간한 에세이 ‘하악하악’은 ‘플레이톡’이라는 홈페이지를 개설한 후 이곳에 올린 글을 엮은 책이다. 제목은 ‘거친 숨소리’를 뜻하는 인터넷 어휘를 차용했다.

거침없는 정치적 발언 탓에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8년 뉴라이트 교과서에 대해 “김구 선생을 테러분자라고 가르치는 세상”이라고 비판하거나, 이명박 정부의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자화자찬을 비틀어 “도둑적으로 완벽한 정부”라고 꼬집기도 했다. 지난 2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투병 중에도 당시 이재명 대선후보 지지선언을 했다.


춘천교대 재학시절 미전에 입상하는 등 화가지망생이기도 했던 고인은 1990년 ‘4인의 에로틱 아트전’과 1994년 개인전을 열었다. 춘천시에서 30여년을 거주하다가 2006년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감성마을로 이주했다. 2012년 8월에는 이곳에 생존 작가 최초로 이외수 문학관이 건립됐다. 2019년에는 아내 전영자씨와 결혼 44년 만에 졸혼을 선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14년 위암 2기 판정을 받은 뒤 수술을 받고 회복했다가 재작년 3월 다시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최근까지 재활에 힘써왔다. 올해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후유증으로 폐렴을 앓아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투병 중 숨을 거뒀다.

유족은 부인 전영자씨와 아들 한얼, 진얼씨가 있다. 빈소는 춘천호반장례식장. (033)252-0046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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