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5월 1일 미국 워싱턴주 리븐워스(Leavenworth) 교도소에 살인죄로 기소된 윌리엄 웨스트(William West)라는 흑인 청년이 수감됐다. 교도소 측은 절차에 따라 수감자의 신체 검사를 진행했다. 키나 몸무게와 달리 성인이 된 뒤로는 거의 바뀌지 않는 5개 신체 특징, 즉 얼굴 길이와 이마 넓이, 가운뎃손가락 길이, 왼발 길이, 팔목에서 가운뎃손가락까지의 길이(cubit)로 개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이른바 '베르티옹 측정법(Bertillon measurements)'이었다.
측정 결과 웨스트의 베르티옹 수치는 살인 전과자 윌 웨스트(Will West)의 수치와 동일했고 둘의 외모 역시 흡사했다. 경찰은 동일인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교정 당국은 윌 웨스트가 이미 다른 범죄로 교소도에 수감돼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까다로운 확인 절차 때문에 기피되던 지문 대조 결과 둘은 다른 인물로 판명됐다. 재검사 결과 둘의 왼발 길이가 7㎜가량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베르티옹 측정법의 신뢰도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베르티옹 수치는 오늘날의 지문이나 DNA 정보처럼, 당시 널리 통용되던 확정적 생체정보로, 프랑스 경찰관 겸 생체인식 연구가 알퐁스 베르티옹(Alphones Bertillon, 1853~1914)이 19세기 말 고안한 기법이었다. 베르티옹 측정법은 수사·범인 식별뿐 아니라, 백인들의 눈에 외모로 잘 구분이 안 가던 중남미나 아프리카 식민지 주민 구분에도 널리 쓰였다. 미국에서도 20세기 초까지 전원 백인이던 경찰은 흑인 성노동자 등 범죄자 식별에 활용했다.
사실 지문의 고유성은 훨씬 전부터 인정받았지만 대조 식별의 어려움 때문에 일선에서 외면돼 왔다. 웨스트 사건 이후 비로소 지문 검사가 보편화·표준화했고, 감식대조 기법도 빠르게 발전했다. DNA가 수사 및 개인 식별 수단으로 활용된 것은 1986년(한국은 1991년)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