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7시 30분, 중국 베이징의 차오양구에 위치한 한 대형마트. 각종 채소와 고기, 달걀, 휴지 등 생필품이 담긴 카트들이 계산대 앞에 줄지어 늘어섰다. 평일인 월요일 아침 마트의 풍경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긴 줄이었다. 일단 카트에 가득 담기라도 했으면 다행이다. 계산대 뒤로 펼쳐진 매장 곳곳에선 이미 다 팔리고 텅 빈 매대 앞에서 주민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마트 직원이 빈 매대에 물건을 다시 채우기가 무섭게 사람들은 카트에 재빨리 쓸어 담기 바빴다. 평소라면 꽉 차있어야 할 육류 코너 역시 듬성듬성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생필품 사재기'가 현실이 됐다. 차오양구를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급증, "베이징도 곧 상하이처럼 봉쇄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며 "일단 쟁여 놓고 보자"는 식량 비축 심리를 자극한 것이다. 마트에서 만난 한 중국인은 "30분을 기다려 겨우 물건을 계산하고 나왔다"고 불평했다. 베이징도 봉쇄된다는 소문이 있냐는 물음에 "모르겠다. 모르기 때문에 일단 물건을 사 두려는 것"이라며 불안감을 토로했다. 아파트 상가에서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A씨는 계속해서 울려대는 배달 주문 전화에 연신 "오늘은 안 된다. 다음에 주문해 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베이징에선 지난 22일부터 25일(오후 4시 기준)까지 차오양구 등 8개 구에 걸쳐 총 70명의 신규 감염자가 발생했다. 최근까지 한 자릿수의 일일 확진 추세를 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심상찮은 변화다.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오고 있는 차오양구는 각국 대사관과 중국중앙방송(CCTV) 사옥, 대형 쇼핑몰, 대단지 아파트가 밀집한 베이징의 중심 지역이다. 차오양구는 베이징(2,100만 명) 16개 구에서 인구가 약 350만 명으로 가장 많은 곳이다. 시 당국은 이날 차오양구 일부 지역을 임시 관리·통제 지역(약 15㎢ 면적)으로 지정했다.해당 지역 주민은 필수적인 사유가 아니면 거주 단지 밖으로 이탈하지 못해 사실상 '미세 봉쇄령'을 내린 셈이다. 25일과 27일 해당 구역 내 인원에 대해 두 차례 핵산(PCR) 전수검사를 하고 전원 음성이 나오면 관리통제구역 지정을 해제하기로 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차오양구 일부 지역에서 '패닉 쇼핑'이 발생하고 있다"며 "주말 사이 일부 신선 채소가 일시적인 부족 현상을 겪었다"고 보도했다. 베이징 내 통제구역의 식료품 주문이 평소보다 50% 이상 증가했으며, 온라인 주문 배달 플랫폼인 메이투안마이차이의 현장 직원도 두 배가량 늘어난 상태다.
이 매체는 "상하이 주민들의 식량 부족을 목격한 베이징 시민들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식료품을 사들이면서 발생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도시 봉쇄 때마다 '식료품 공급에 큰 문제가 없다"는 당국의 말을 전하기 바빴던 관영 언론의 최근 보도 흐름과는 사뭇 다른 뉘앙스다.
차오양구 아파트 단지 곳곳에는 핵산(PCR) 검사를 받기 위해 나온 주민들로 또 다른 북새통을 이뤘다. 차오양구 주민들을 대상으로 이번 주 세 차례에 걸친 전수검사가 이날 시작된 탓이다.
대형 복합상가가 즐비한 곳에 설치된 한 검사소 앞 대기줄은 언뜻 봐도 100m 넘게 이어지고 있었다. 5년째 베이징에 살고 있다는 한 교민은 "전수검사가 봉쇄의 전 단계쯤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라며 "검사 결과에 따라 봉쇄 여부가 결정되지 않겠냐"며 초조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