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1770~1827)의 피아노 소품 ‘엘리제를 위하여’는 독일 음악학자 루트비히 놀(Ludwig Nohl)이 1867년 출간한 ‘베토벤의 새로운 편지’란 책으로 세상에 소개됐다. 놀은 베토벤의 제자 테레제 말파티(Therese Malfatti, 1792~1851)의 유품에서 이 곡의 친필 악보를 발견했다. 원본 악보 제목은 ‘Für Elise am 27 April [1810] zur Erinnerung von L. v. Bthvn)’이었다. 연주 시간 약 3분 분량의 사랑스러운 독주곡은 이후 ‘엘리제를 위하여(Bagatelle No. 25 in A Minor)’란 제목으로 널리 알려졌고, ‘엘리제’에 대한 의문도 더불어 커졌다.
음악학자들이 유력시하는 후보는 당연히 말파티다. 적지 않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린 베토벤은 오스트리아 거상의 딸인 말파티에게도 구혼한 적이 있었다. 말파티는 1816년 오스트리아 한 귀족과 결혼했다. 학자들은 정황상 말파티가 엘리제이며 베토벤의 악필 탓에 ‘Für Therese’라 쓴 글을 놀이 ‘Elise’로 잘못 옮겼으리라 추정한다. 하지만 베토벤이 아무리 악필이었어도 구애의 곡을 헌정하며 알아보기도 힘들 만큼 제목을 날려 썼을까 하는 상식적 의문은 남는다. 불행히도 원본 악보는 사라지고 없다.
다른 두 명의 후보로는 1806년 베토벤 오페라 ‘피델리오’에 출연한 한 음악가의 동생인 독일 소프라노 엘리사베트 뢰켈(Elisabeth Röckel)과 베토벤의 또 다른 제자 엘리제 바렌스펠트(Elise Barensfeld)가 꼽힌다. 베토벤과 뢰켈은 이 곡이 쓰이던 무렵 무척 가까운 사이였고, 독일 음악학자 클라우스 마틴 코피츠에 따르면 베토벤이 결혼까지 생각하던 여인이었다고 한다. 뢰켈 역시 1813년 베토벤의 한 친구와 결혼했다. 엘리제 바렌스펠트는 작곡 당시 13세 음악 신동으로 말파티의 저택 맞은편에 살며 베토벤과도 교유한 소녀였다. 엘리제는 그렇게 뿌연 실루엣으로 남아있고, 그 익명성 덕에 연인의 대표 명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