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에서 예수의 행적을 읽을 때마다 실로 이분이 하나님의 아드님이시구나, 하고 깊이 감동하는 순간은 그가 어마어마한 기적을 행하거나 숭고한 모습으로 신의 뜻을 전파할 때가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시는 순간이다. '먹기를 좋아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라고 비난받았을 정도로 예수는 산 사람들의 입에 먹을 것, 마실 것이 들어가는 것 챙기는 데에 진심이었다. 첫 번째 이적을 마실 것 대 주는 것으로 시작한 분이었다. 이후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면서도 예수는 언제나 누가 배를 주리고 있는지를 보았다. 죽은 소녀를 살린 후에도 가장 먼저 아이에게 마음을 쓰셨다. "이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사흘 동안 먹지도 못한 무리가 자신을 따라다닐 때 예수는 근심한다. 내가 저들을 불쌍히 여긴다(헬라어로는 애간장이 녹는다는 표현이라고 한다)고, 내가 굶겨서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할 것이라 염려한 후 떡을 뗀다. 그 초라한 떡은 기어코 몇천 명을 먹였다.
제자들은 아무도 예수의 마지막 소원대로 최후의 기도 자리에 가지 않고, 함께해 주지도 않고, 십자가의 순간에 동참해 주지도 않았다. 뿔뿔이 흩어져 어부 일로 돌아갔지만 밤새 고기가 잡히지 않아 고단한데 뭍에 예수의 모습이 보인다. 배반을 꾸짖으러 온 것이 아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먹일 생선과 떡을 구워 놓고 말한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배신이고 부활이고 아침부터 먹으라는 것이다. 자기 몸을 빵과 포도주에 비유한 분이 오죽할까.
여기 빵을 굽다 기진한 노동자가 있다. 임종린 전국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장은 2007년부터 빵을 구웠다. 2017년 노조를 만들며 요청한 것은 '월 6회 이상 휴무, 점심시간 보장' 등 상식적 노동환경이었다. 이 상식이 파리바게뜨가 속한 SPC 측에는 상식이 아니었는지, 임종린 지회장은 결국 무기한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4월 27일이면 꼭 한 달이 된다. 사흘 동안 굶으며 자신을 따라다닌 이들이 기진할까 애간장이 녹듯 가엾게 여겼던 예수가 점심시간 한 시간은 밥 먹게 해 달라, 20일 연속 근무는 무리니 업무에 주휴 개념을 적용해 달라 하다가 사흘은커녕 그 열 배를 굶고 있는 노동자가 앉은 천막에 온다면 무어라 할까.
사측에서는 그간 농성장을 두 번 방문했다. 첫 번째 왔을 때는 국회의원들도 단식할 때 다 이렇게 한다며 비타민 음료를 가져왔다. 두 번째로 와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벌이고 있는 불매운동을 언급하며 '불매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고 한다. 기묘하다. 불매운동을 왜 당사자인 시민들에게 그만해 달라 하지 않고 노조에 이야기하는가? 노조가 시민들의 배후에서 불매운동을 조종하고 있다는 그림을 만들고 싶은, 혹은 만들려 하는 프레이밍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예수의 말은 일단 빵은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빵을 먹어야 말씀이 들린다. 그러나 제빵기사들이 새벽에 출근하고 받는 조식 식대는 해피포인트 500원 상당이다. 자신이 굽는 그 어떤 빵도 살 수 없다. 예수가 임종린 지회장을 보신다면 '비타민 음료를 마시라'고 하시진 않을 것 같다. 적어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 "와서 (한 시간 동안은 휴게시간을 보장받아) 중식을 먹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