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용서할 수 없는 전쟁 범죄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이달 초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정황이 드러나자 한 말이다. 맞는 말이지만 위화감이 느껴졌다. 난징대학살, 식민지 조선인에 대한 강제노역과 일본군 위안부 등 자국의 전쟁범죄를 검정을 통해 교과서에서 지워 나가는 것은 누구인가.
아베 신조 전 총리 등이 지난 21일 야스쿠니신사 참배 후 우크라이나에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고 말한 건 언어도단이었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곳을 참배하면서 타국에 침공당한 나라의 국민을 생각한다니, 혹시 이들은 태평양 전쟁이 미국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쟁이라고 착각하고 있나.
‘제 눈의 들보는 못 보는’ 일본의 역사인식은 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각각 일본 기업과 정부를 대상으로 제기한 손배 소송과 관련한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로 모두 해결된 문제이므로 법원이 다른 판결을 내린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한국을 비난한다.
1년여 전 도쿄특파원 부임 후 ‘한국은 국제법과 국가 간 약속을 지키라’는 비난조 발언을 일본 총리와 외무장관의 입에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그러다 보니 마치 일본이 전쟁 때 조선인을 데려가 가혹한 노동을 시킨 일이나 일본군 ‘위안소’에 조선인 여성을 동원한 것은 별일 아니고, 오히려 배상을 요구한 행위가 천인공노할 죄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전쟁범죄를 비난하는 국가라면 자국의 역사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나. 중국, 러시아, 북한 같은 주변국에 둘러싸여 안보 환경이 불안정해진 지금, 한일 관계 개선은 양국에 불가피한 과제다. 한일 정책협력 대표단의 방일도 이런 인식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 정부가 피해자를 무시하고 마치 항복하듯 ‘해결책’을 제시할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일본도 역사 앞에 겸허해야 한다. 피해자의 존엄을 회복하는 방법은 전범국이자 가해국인 일본도 함께 생각해야 하는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