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추경 규모도 못 정한 인수위...산발적 금융·부동산 대책에 시장은 '혼란'

입력
2022.04.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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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실책 되돌리겠다고 했지만
부동산·금융 정책 깜깜무소식
1호 공약 소상공인 지원, 추경 규모도 확정 못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내걸었던 소상공인에 대한 확실한 보상과 과감한 규제완화 정책이 출범 한 달이 넘도록 ‘깜깜이’에 머물고 있다. 새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장은 들썩이지만, 정작 속도전을 예고했던 인수위는 굵직한 경제정책 발표를 연달아 미루면서 오히려 인수위가 시장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50조? 35조? 출범 한 달 넘게 추경 규모도 ‘미확정’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인수위는 이르면 이달 말 ‘소상공인 손실보상 종합 패키지’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최종안에는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코로나19로 매출이 감소한 소상공인·자영업자 약 330만 명에게 600만 원씩 추가 지급 등의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후보 시절 “50조 원 이상의 재정을 투입해 정당하고 온전한 손실 보상을 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인수위는 아직까지 추경 규모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적자국채 발행으로 인한 국가채무 증대, 대규모 유동성 공급에 따른 물가 불안 등의 우려가 커지자, 당선인의 1호 공약임에도 시행을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당장 인수위 안팎에선 추경 규모가 35조 원대로 줄어들 거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인수위의 모호한 스탠스에 자영업자 불만도 커져가고 있다. 서울 구로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임모(46)씨는 "5월이면 보상금을 바로 받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함흥차사"라며 "당선인이 약속한 돈도 다 받지 못할 것이란 소리가 들려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부동산·금융 정책도 갈팡질팡…시장 불안 부추겨

부동산·금융 분야 정책을 놓고도 인수위가 초기와 달리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시장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를 되돌리겠다고 자신했으나, 그에 따른 부작용 우려가 커지자 이 분야에서도 속도조절에 나선 모양새다.

대표적인 것이 대출 규제 완화책이다. 인수위 출범 때만 해도 문재인 정부에서 강화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함께 풀어야 한다는 기류가 강했다. 그러나 DSR까지 완화했다가 자칫 안정세인 가계부채와 집값이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여론만 살피며 이를 어떻게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초기만 해도 인수위는 재건축·임대차 3법 등에 대한 규제 완화 의지를 강력히 드러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1년 배제, 민간임대주택 활성화 등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시장 정상화를 위한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최근엔 집값 상승 부담에 신중론으로 돌아섰다.

굵직한 경제정책 발표를 미룬 인수위는 '아무것도 안 한다'는 비판을 피하려는 의도인지, 대신 소규모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1년 한시 배제 △주택연금 가입대상 주택 공시가격 상향(9억 원→12억 원)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규모 대책의 방향 역시 규제 완화에 맞춰져 있어, 시장에선 가계대출 증가,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 올해 들어 지속적으로 감소했던 가계대출은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이 증가하면서 이달 들어 증가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서울 강남·서초구에선 아파트 매매가격이 최근 수억 원씩 급등했고, 서울 아파트값도 11주 만인 4월 첫째 주 하락세를 멈춘 뒤 3주 연속 보합세를 이어가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막연한 기대감이 시장에 미리 반영된 결과”라며 “인수위의 뜨뜻미지근한 태도가 시장 불안을 오히려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 변태섭 기자
박경담 기자
김지섭 기자
김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