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기다리던 일상이 돌아오고 있네요. 드디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하지만 그동안 익숙해진 생활 패턴이 당장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커요.
저는 46세 워킹맘입니다. IT 회사를 다니며 고등학생과 중학생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사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삶은 쉽지만은 않았어요. 아이들은 비대면 수업을 하게 되고 저도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죠. 밥 먹고 돌아서면 밥하고, 돌아서면 또 밥을 하는 '돌밥돌밥'의 연속이었어요. 다행히 간편식 시장이 금세 보편화하면서 저의 부담은 조금 줄어들었어요.
그렇게 2년여 동안 재택근무와 거리두기의 삶에 완벽히 적응했는데 다시 출퇴근과 사무실 근무를 하려니 너무 괴롭습니다. 사실 내향적인 성격의 저에겐 지난 2년이 마냥 지옥같지만은 않았어요. 쓸데없는 인간관계도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보기 싫은 업계 사람들도 최대한 피할 수 있어서 좋았죠. 웬만한 업무 미팅도 온라인이나 전화로 대체돼 대면보다 힘을 덜 들일 수 있었어요.
지금은 출근은 물론이고 회식, 출장, 집합 교육 모두 슬슬 재개될 조짐이 보여요. 직장 동료들과 친목을 다지는 게 싫은 건 아니지만 겨우 맞춰온 생활 패턴을 또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니 약간은 두려워요.
최근 오미크론 감염 뒤 찾아온 후유증으로 만성 피로와 무기력증과도 싸우는 중이에요. 재택근무를 한 지 만 2년이 지나면서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졌는데, 이제는 쉬어도 쉬어도 힘이 나지 않아요. 정상적인 업무 수행조차 버거울 정도로 심신이 지쳤어요.
요양병원에 계셨던 어머니께서 얼마 전 코로나19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니 '굳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나' 싶으면서 헛헛한 마음도 드네요.
체감상 지난 2년은 제 삶의 모습을 가장 많이 바꾼 것 같아요. 그런데 준비도 안 됐는데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니 막막하고 괴로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은정(가명·46·회사원)
아무리 우리의 일상이 표면적으로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의 마음까지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개개인은 사회에서 낙인 찍혀 삶이 조각나기도 했고,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기도 했죠.
저는 은정씨, 아니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에게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추천합니다. 1940년대 감염증이 창궐하는 알제리 오랑에서 각양각색 인간군상이 삶을 헤쳐나가는 얘기가 담겨 있는데요.
이 책은 코로나19 확산 초창기인 2020년 3월에 국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질병의 위협 앞에서 이를 은폐하려는 당국자들의 모습, 일상 생활이 제한되면서 불안과 혼돈이 세상을 뒤덮는 장면,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서서히 질병에 무감각해지는 장면 등이 독자들의 공감을 샀죠.
그런데 감염증이 서서히 줄어드는 지금, 이 책은 또 다른 울림과 교훈을 선사합니다. 소설 속에서도 인간의 절망, 회피, 무력감, 두려움 등이 나오는데요. 소설은 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연대를 보여줍니다.
취재차 오랑을 방문했다가 봉쇄령으로 갇히게 된 랑베르는 탈출을 시도했지만 "이 사건은 우리 모두와 관련된 것"이라며 오랑에 남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연대, 돌봄, 더 나아가 인간성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보건대의 모습도 나옵니다.
팬데믹 시대를 적확하게 반영하는 이 고전은 결국 두 가지를 말하는 듯합니다. 매일의 성실함과 선의에서 비롯된 용기와 희망. 소설 속에서 절망과 무력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내는 건 소수의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서로를 지켜냈고 질병에 맞서 싸웠습니다.
우리는 재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겁니다. 오히려 이런 위기의 순간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불행 속에서도 행복을 찾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죠.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아무리 온라인이 발달해도 오프라인의 체온과 다정함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멀어진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은정씨, 이제는 밖으로 나가서 일상을 나누고 안부를 전하는 일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비대면은 '힘이 덜 드는 일'일지 몰라도 대면만큼 인간성을 나누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나누고 관계를 회복할 때 은정씨의 일상이 새롭게 변화하리라 믿습니다.
은정씨, 지난 2년여의 시간 동안 얼마나 큰 변화에 적응하느라 고생이 많으셨을까요. 일반적으로 T형은 공감보다 논리를 앞세운 사고를 한다지만,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함께 걸어간 이로서 은정씨가 말씀하신 부분에 십분 공감이 됩니다.
코로나19는 우리가 특별한 의문을 갖지 않고 살아왔던 일상에 큰 질문을 던졌습니다. 꼭 퇴근 후 직장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풀어야 하는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다면야 굳이 통근 지옥을 뚫고 회사 사무실에 앉아있어야 하는가, 그간 우리는 아늑한 집을 두고 거리의 카페와 식당 등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던 건 아닌가 등등.
그랬던 우리는 다시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 도입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년 1개월 만에 해제되면서 대면 활동이 늘어나자 '부적응'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180도 다른 삶의 풍경. 그중 무엇이 진짜 내가 집중할 삶의 모습인 걸까요.
평생의 화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저는 코로나19 기간 개봉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소울'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영화는 지난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음악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 애니어워드에서는 각본, 편집, 음악 등 여러 분야의 상을 휩쓴 수작입니다. (※아래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미국 뉴욕에서 임시 교사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주인공 조 가드너는 재즈 연주자라는 꿈을 품고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꿈에 그리던 공간에서 재즈 밴드 공연에 참가할 수 있게된 날, 그는 맨홀에 빠져 숨을 거두게 되는데요. 한순간에 영혼이 된 그는 '태어나기 전 세상'에 떨어지고, 그곳에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 수백 년 동안 환생을 유예해온 '영혼 22'를 만납니다.
우연한 계기로 조와 영혼 22는 지구로 가게 되고, 조의 몸으로 들어간 영혼 22는 잠깐 동안의 평범한 일상을 누린 뒤 삶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으로 태어나기로 마음먹죠. 영혼 22와의 시간을 통해 행복은 거창한 꿈에 있지 않은 것을 깨달은 조 역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매 순간순간을 살 거야. (I'm going to live every minute of it)"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행복이란 하루하루 마주치는 평범한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됐어요. 물론 대단한 성취나 활발한 사회 활동 등은 우리의 삶을 짜릿하게 만드는 요소일 겁니다. 하지만 조금 더 당연하고 본질적인 부분에서 보람을 길어낼 수 있다면, 코로나19가 바꿔놓은 풍경과 상관 없이 우리는 일상을 단단하게 살아낼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