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JT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썰전라이브(썰전)'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가 만났다. 유튜브 라이브 동시 접속자는 최고 2만 명 가까이 올랐고, 80분으로 정규 편성되었던 1부 이후 유튜브 생중계로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2부 토론의 막바지까지도 1만2,000여 명이 시청했다. 하지만 대체로 여론은 토론이 '큰 성과 없이 끝났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정작 토론 뒤의 관심은 이날 전장연이 들고 온 자료와 그 출처에 쏠리고 있다.
이날 토론에는 그래프 하나가 등장했다. 토론 중반쯤 이 대표는 박 대표에게 "'볼모'라는 표현이 불편하면 어떤 표현을 써야 하나", "투쟁은 세게 하면서 어휘에는 되게 민감하신 것 같다"라고 따져 물었다. 지난달 25일 이 대표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전장연을 향해 '시민을 볼모로 삼은 투쟁을 중단하라'는 게시글을 올렸고, 전장연 측은 "이 대표가 혐오를 조장한다"고 했던 언쟁을 다시 언급한 것.
이에 박 대표는 "(이 대표가) '볼모', '인질'이라는 표현을 쓰고 나서 장애인에게 엄청난 욕설이 쏟아졌다"고 토로하면서 주로 2030 남성들이 드나드는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의 '유머/움짤/이슈 게시판 내 전장연 시위 관련 댓글 비율 경향'이라는 제목 아래에 그래프가 그려진 판을 들어 보였다. 그는 "이 대표의 발언 이후 (장애 혐오 발언) 빈도수가 확 올라갔다"면서 "잘못된 데이터라면 나중에 확인해보라"고 했다.
사람들이 자료 출처를 궁금해하던 중 자신이 해당 자료를 만들었다면서 "우리 사회에 혐오 조장을 경고하기 위해 데이터를 분석했다"는 사람이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썰전에 나온 자료를 마련했지만 "전장연과도 특정 정당과도 관계없다"고 주장했다.
에펨코리아 이용자들은 커뮤니티 이름이 거론되자 '토론에 우리가 등장하다니'라며 황당해하면서도 관심을 보였다. "틀딱(노인을 비하하는 말)들이 우리 자료 조사 가능하냐. 누가 해준 거냐"라거나 "방송사에서 만들어 줬을 것이다"라는 등의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익명의 데이터 분석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A씨는 이 대표의 발언이 장애인을 향한 혐오를 부추겼음을 증명하기 위해 둘의 상관 관계를 증명하는 데이터를 시각화했다면서 작업 과정과 결과를 설명했다.
A씨의 트위터 내용을 종합해보면, 그가 한 일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이 대표 '볼모' 발언 전후로 에펨코리아에 올라온 전장연 시위 관련 댓글을 모으고 ②수집된 댓글을 혐오 발언인지 판별해주는 프로그램 '헤이트스코어(HateScore)'에 대입해 ③결과를 나타내는 그래프를 그렸다.
트위터를 통해 그는 먼저 게임회사 스마일게이트의 AI 전담센터가 혐오 발언을 판별하도록 개발한 딥러닝 모델을 소개했다. 스마일게이트AI 관계자에 따르면, 이 회사는 2년 동안 온라인 공간의 댓글을 모아 1만 건의 혐오 표현을 추려냈고, 이를 AI에 학습시켜 새롭게 입력되는 댓글이나 정보가 혐오발언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프로그램 헤이트스코어를 만들었다.
A씨는 여기에 이 대표의 '볼모' 게시글 이전과 이후 에펨코리아에 올라온 전장연 시위 관련 댓글을 모아 대입했고, 혐오 표현으로 탐지된 것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여줬다. 스마일게이트AI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헤이트스코어를 개발하고 3월 공공에 개방한 것은 맞다"고 했지만 "익명의 데이터 분석가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답했다.
A씨는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준석 대표의 발언 전 일주일(18~24일) 동안 전장연 관련 글에 달린 악플 비율은 11%였다"며 "그러나 언급 이후에는 17%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율뿐 아니라 수도 증가했다"며 "전장연‧장애인을 향한 악플이 일주일 동안 2.7배 늘었고 장애 혐오는 9.7배 늘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서 단순 악플은 욕설이 포함된 댓글을 가리키며, 혐오는 장애인 비하 표현이나 조롱의 댓글을 말한다.
다음날인 13일에는 한 누리꾼이 "이 대표 발언으로 생겨난 혐오가 아니라, 지속되는 장애인 시위에 누적된 비판"이라고 문제를 제기하자 A씨는 자료를 보강하면서 '중요한 것은 정치인의 발언에 영향을 받아 혐오 표현이 늘어났다는 사실'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어 "지하철 탑승 운동이 있었던 날을 붉게 표시해두었다"며 "악플과 혐오 발언의 발생은 시위 일시를 따라 (점차 증가하는) 형태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오히려 "자체적인 패턴과 이슈화 여부가 더 중요했다"며 "이 대표의 발언이 장애인과 전장연 혐오의 촉매제가 됐다"고 했다.
토론 이후에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펨코를 악마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자 A씨는 "전혀 아니다. 이준석 대표의 발언에 영향을 많이 받는 (지지자들의)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펨코 유머게시판을 선택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장연 측이 "토론회 때 함께 논의할 데이터를 만들어주신 익명의 데이터 분석가님 감사하다"는 게시글을 공유하자 "더는 누군가 앞장서서 혐오 발언을 맞설 필요가 없는 사회, 다함께 혐오는 혐오라고 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답했다. 전장연 관계자는 한국일보에 "12일 트위터에 게시된 글을 썰전에서 활용한 것"이라며 A씨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A씨는 자신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자료를 분석한 것이 아니라 2일 이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인권위는 (내 발언이 가지는) 무슨 사회적 영향을 밝히겠다고 하는지 기대하겠다. 신속하게 하라"는 말에 대한 답이라고 했다.
A씨의 존재를 알게 된 에펨코리아 이용자들은 "작성자는 전공자인 것 같다"면서 해당 자료를 만든 사람을 궁금해했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 이용자들은 익명의 데이터 분석가에게 "동료시민으로서 감사드린다", "너무 좋은 일을 해주셨다"며 감사함을 전하고 있다. 몇몇 이용자들은 "아직 이 세상에 희망을 본다"거나 A씨의 글을 캡처해 "일독을 권한다"면서 지인에게 공유하기도 했다. 헤이트스코어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한 한 연구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데이터셋을 공개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벌써 한 트위터 이용자가 분석해서 올린 자료가 등장했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A씨는 "관심을 주시니 더 책임감 있게 활동하겠다"며 앞으로도 익명의 데이터 분석가로서 활동할 것과 "본업이 따로 있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욱 세밀한 분석을 가져오겠다고 선언했다. 20일 한국일보는 A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응답을 받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