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의 서글픈 보물섬

입력
2022.04.24 10:00
25면

편집자주

우리는 중남미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는가. 빈곤, 마약, 폭력, 열정, 체게바라? 인구 6억2,500만. 다양한 언어와 인종과 문화가 33개 이상의 나라에서 각자 모습으로 공존하는 중남미의 진짜 모습을 민원정 칠레 가톨릭대 교수가 전해준다.

등번호 74, 메이저리그 대표 마무리 투수 켄리 얀센.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가족들이 있는 쿠라사오 빌렘스타드 카야 코코리시 74번지(Willemstad Kaya Kokolishi 74)로 월급을 보내던 시절을 잊지 않으려는 그의 가슴 아린 숫자다.

쿠라사오는 카리브해 남쪽에 있는 세 개의 네덜란드령 섬 중 하나다. 1492년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안틸라스 제도에 도착한 이후, 카리브해 지역은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의 놀이터이자 싸움터였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내륙 탐사에 관심을 가질 때, 브라질의 포르투갈인들이나 북유럽인들은 처음부터 해안지역으로 눈길을 돌렸다. 수출용 설탕, 담배, 커피, 면화 재배가 시작되었다. 질병과 분열로 원주민들의 수가 줄자 아프리카 노예들이 노동력을 대체했다. 이들 흑인 노예들은 오늘날 브라질과 카리브해 흑인들의 조상이 되었다. 제도권 밖 해적들도 보물을 찾아 이 섬 저 섬을 헤집고 다녔다. 카리브해 지역은 이베리아인, 아메리카 원주민, 흑인의 속성이 섞여 세계에서 문화적, 인구 통계학적으로 가장 다양한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쿠라사오에서 스페인어·포르투갈어·네덜란드어·영어가 섞인 사투리인 파피아멘투어(Papiamentu)를 사용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19세기에 영어권 국가들은 이 지역 개발을 둘러싸고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초기에는 영국이 중미와 카리브해 지역을 지배하다시피 했으나 1898년 미국이 미-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하며 패권을 차지했다. 세이어 머핸 제독은 저서 '역사에 비추어 본 제해권의 영향(The Influence of Seapower upon History·1890)'에서 "운하야말로 종착역 같았던 카리브해를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무역 접점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예언한 바 있다. 미국은 파나마운하 조차권을 거머쥐며 카리브해 왕국 건설 구상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중남미에서 외국 자본의 거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던 영국은 맹주 자리를 빼앗겼고, 미국은 자국 방어선을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확대하며 미국 중심의 패권 질서를 구축했다. 지난 3월 카리브해 지역 영연방왕국과 영국 해외 영토를 순방하던 윌리엄 왕자 내외는 일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벨리즈에서 방문을 거부당했다.

바다라는 물리적 환경에 더해 다양한 식민지 배경, 언어, 문화와 무역 패턴으로 인해 카리브해 국가 간 협력은 쉽지 않다. 히스파뇰라섬을 공유하는 도미니카공화국과 아이티 사이에는 오랜 긴장 관계가 지속되어 왔다. 쿠바, 아이티, 베네수엘라 등 미국의 골칫덩어리들도 이 지역에 늘어서 있다. 멕시코 다음가는 마약 밀매루트, 조세피난처로서도 역할이 만만치 않다. 중국은 오래전 무산된 니카라과운하 계획을 다시 들쑤셔 파나마운하와의 경쟁을 도모하려다 실패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여전히 수출용 설탕, 담배, 커피, 면화를 재배하고, 여전히 가난하다. 서구 정복자와 해적들은 이제 관광객이 되었다. 카리브해 지역 살림은 서구 경제 흐름에 좌지우지되고, 코로나19로 지난 몇 년간 관광 수입이 줄어드니 애가 탈 뿐이다. 영화 007시리즈 속 카리브해는 아름답다. 소설 '보물섬'은 결국 착한 사람들이 보물을 찾는다고 얘기한다. 착한 카리브해인들은 어디에 있나. 아름다운 해변과 낭만을 벗어나면 강대국들이 자원을 들쑤시고 해적들이 우글대던 서글픈 보물섬만 남아 있을 뿐이다.



민원정 칠레 가톨릭대 교수·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