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에서 승리한 정당이 행정부를 장악하는 의원내각제와 달리 대통령제는 국회와 대통령이 서로 견제해 균형을 맞출 것을 의도하고 있다. 국회가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이 경우 국회가 3분의 2 찬성으로 재가결하면 법률로 효력을 발휘하도록 한 것도 그 같은 고려에서다. 하지만 집권당이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경우에는, 국회와 대통령이 서로 견제를 하기보다는 대통령과 집권당이 입법 독재를 할 수 있게 된다.
18대 국회 마지막 순간에 통과된 국회선진화법은 입법 과정에서 여야가 최대한 합의를 도출하도록 하되, 그렇지 못하는 경우는 충분한 숙의 기간을 둔 후에 신속처리대상 안건으로 지정해 본회의에서 처리하도록 했다. 덕분에 19대 국회에선 새누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갖고 있었음에도 직권상정을 통한 일방적 입법을 할 수 없었으니, 당시 국회선진화법의 수혜자는 다름 아닌 민주당이었다.
20대 국회 막바지에 신속처리 안건으로 본회의를 통과한 공수처법과 정당명부제 선거법은 제3지대 정치세력이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민주당이 주도한 것이었다.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민주당이 두 법률을 통과시켰지만 그 결과는 허무하다. 야당은 물론 민주당까지 위성정당을 만들어서 총선에 임했으니, 도대체 왜 그런 법률을 무리하게 통과시켰나 하는 의문이 든다. 역시 무리하게 탄생시킨 공수처도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21대 국회에선 민주당이 국회법상의 신속처리가 가능한 의석을 확보한 데다가,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국회부의장과 상임위원장을 포기해 버려서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국회를 운영했다. 민주당은 이 기회를 이용해 임대차법과 종부세법을 멋대로 개정하는 등 입법 독재를 만끽했다. 하지만 그 결과로 민주당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패배했다. 민주당이 독자적으로 추진한 법률은 선거와 검찰 제도의 근간을 바꾸고 국민 생활과 재산에 큰 영향을 주는 것들이었다. 이런 법률은 여야가 협상을 해서 합의에 이르거나 아니면 최대한 이견을 좁힌 후 표결에 들어가는 것이 원칙인데, 민주당은 그런 정치적 상식을 저버리는 패착을 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만료를 불과 두 주일 남짓 남겨 놓고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민주당이 기울인 노력은 실로 가상했다. 민주당은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켜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구성하려고 했다. 안건조정위원회는 여야 동수로 구성된 위원들로 하여금 쟁점 법안을 충실하게 심의하도록 해서 일방적 다수결로 법안이 상임위원회를 통과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제도인데, 민주당은 이 같은 국회선진화법 정신을 사실상 유린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마련한 중재안에 여야가 합의를 해서 파국은 면했다. 그렇다해도 민주당이 이토록 무리수를 두는 저의가 대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누더기처럼 돼버린 검찰 관련법을 대통령 임기 만료 직전에 또 다시 뜯어고치는 모습은 구차하며, 이런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는 문 대통령 역시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임기 막판에 '대못 입법'을 하는 것이 문 대통령의 뜻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 공수처 도입, 조국 장관 임명 등이 모두 문 대통령의 의중이었듯이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결국은 실패했다. 이 역시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