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애(76) 대구자원봉사포럼 회장은 지난해 12월에 열린 '2021년 전국자원봉사자대회'에서 국민훈장을 수상했다. 52년간 지역에서 학교 밖 청소년들을 선도하고 여성과 장애인의 목소리를 꾸준히 대변했던 것이 높게 평가받았다. 누구나 소문낼 법한 일이었지만 정 회장은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그는 "묵묵히 해왔던 일들이 갑자기 재조명돼 부끄럽다"며 "자원봉사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이 처음 자원봉사계에 발을 들인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국문학과 진학을 목표로 했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어쩔 수 없이 사회복지학과를 택하게 된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복지 분야에 대한 저변이 약할 때였다. 하지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많았다. 정 회장은 1968년 YWCA 실무간사를 시작으로 전쟁과 산업화의 그늘에서 고통받고 있던 이들이 올바르게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왔다. 시설 확충에도 힘썼다. YWCA 재직 시절 지역사회 개발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여성인력개발센터를 지었고, 동료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대구어린이회관 건립기초를 닦은 백만인 모금걷기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수혜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파악해 도움을 주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며 이 일에 점차 보람을 느꼈습니다."
다양한 활동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BBS운동이었다. BBS운동은 'Big Brother's and Sister's Movement'(의형제맺기 운동)의 줄임말로, 당시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좋은 친구나 언니가 되어 그들을 바른길로 이끄는 활동이다. 정 회장은 당시 남구 일대에 집단 거주하던 BBS 아이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누나와 선생님 역할을 자처했다. 1978년에 그들에게 직접 받은 'B.B.S. 경북지부 착한누나상'은 정 회장의 가장 큰 자랑 중 하나다.
"당시에 거기서 제일 어린 학생이 14살이었습니다.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다 보니 가만 놔두면 나쁜 길로 빠질 수도 있었죠. 그들이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 이끌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대학교수, 학교 교장, 사업가 등 각자 자리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뒀어요. 최근에도 연락을 하며 모이곤 했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통 못 봐서 아쉽습니다."
이후로도 정 회장은 YWCA 회장, (사)복지양친회 회장,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사장, 제4대 대구광역시 시의원 등을 역임하며 이 세상 그림자의 농도를 옅게 하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대구자원봉사포럼 회장으로서 지역 내 자원봉사활성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는 그는 "이 모든 건 누구나 할 수 있었던 일"이라며 자평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지 정확히 파악하고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 사회복지의 기본만큼은 확고합니다. 지금까지 '내게 날아든 새는 쫓지 않는다'는 좌우명으로 그 기본을 지키다 보니 여기까지 왔을 뿐입니다. 그저 앞으로도 계속 곁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