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가 취임 일성으로 '우리 경제의 장기 저성장 극복과 가계·정부 부채 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비록 한국은행의 주 임무가 통화정책을 통한 '물가안정'이지만, 우리 경제가 올바른 길로 향하도록 한은 총재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21일 취임식을 열고 4년 임기를 시작한 이 총재는 "지금 한국 경제는 재도약을 하느냐, 장기 저성장 늪에 빠지느냐의 대전환 기로에 서 있다"며 "이런 갈림길에서 올바른 선택을 위해 경제정책의 프레임(틀)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한은의 주 역할이 통화정책 운용이라는 외부의 지적을 의식한 듯 "거시적 담론을 언급하는 게 의아할 수 있겠지만, 한국은행의 가장 큰 임무는 거시경제 안정이기도 하다"며 "경제가 당면한 중장기적 도전을 고려하면, 한은의 책임이 통화정책 테두리에만 머무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해 이 총재가 제시한 해법은 '민간 주도 성장'과 '경제 구조 개혁' 등이다. 그는 "과거와 같이 정부가 밤새워 일한다고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며 "구조 개혁을 통한 자원의 재분배와 민간 주도로 창의적이고 질적인 성장을 도모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한은의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로 부채 문제를 꼽기도 했다.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하려는 듯 '거품 붕괴'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그는 "부채의 지속적 확대가 거품 붕괴로 이어지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것을 과거 경험으로 알고 있다"며 "거시경제 안정을 추구하는 한은은 부채 연착륙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중장기적 난제 외 그의 앞에 놓인 단기 해결 과제도 만만치 않다. 우선 나날이 치솟는 물가를 안정시키면서도 경제성장 기조를 꺾지 않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
이 총재는 앞서 진행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인기가 없겠지만, 금리 인상 신호를 지속적으로 주겠다"며 '물가안정'에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다만 최근의 물가 급등이 국제유가 상승 등 공급 측 요인이 큰 만큼 금리 조절 효과가 제한적일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서둘러 올리다가, 경제 회복세가 완전히 꺾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총재는 이에 대해 청문회에서 "경기 속도가 크게 둔화하면 조율하겠다"는 전제를 달았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으로선 성장과 가계부채 문제, 미국과의 긴축 속도 조절 등 여러가지 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금리를 조정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