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교전이 격화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의 제공권 사수가 절박해졌다. 병력ㆍ장비 열세에도 지형지물을 활용해 러시아군을 방어할 수 있었던 수도 키이우 일대와 달리, 돈바스는 평야가 많아 기존 대공 무기로 러시아군의 공중 공격에 대응하기는 역부족인 탓이다. 앞서 확전 위험을 이유로 전투기 기체를 공급하는 데 주저했던 서방은 전투기 부품 지원을 시작으로 미묘한 입장 변화를 보이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우크라이나 공군이 항공기 부품을 공급받아 전투기 20대를 추가 운용하게 됐다”며 “우크라이나는 3주 전보다 더 많은 작전용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공군도 “미국 도움으로 항공기 복원과 수리에 필요한 부품을 받았다”고 확인했다.
전날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이 미국 외 국가가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제공했다고 말한 것과 관련, 이 관계자는 “기존 항공기 기능 보완을 위한 부품 지원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다른 나라가 전투기 이전을 제안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관련 협의가 진행됐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어느 나라가, 어떤 기종의 부품을 제공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가 주로 구소련제 전투기를 운용한다는 점에 비춰 동유럽 국가인 폴란드,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등일 것으로 미 경제지 포브스는 추측했다.
우크라이나가 전투기를 더 많이 확보하면 제공권을 장악하는 것은 물론, 지상전을 펼치는 병력에도 공습을 지원할 수 있어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개전 초기부터 전투기 지원을 간곡히 요청했던 이유다. 하지만 서방은 전투기 지원이 자칫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자극해 러시아와 서방 간 직접 충돌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우려해 왔다. 전투기는 러시아 영토로 넘어가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무기라는 점에서 푸틴 대통령에게는 일종의 ‘레드라인’으로 여겨진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미국은 3월 초 구소련제 전투기 Mig-29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겠다는 폴란드 제안도 반대했다.
전투기 공급에 극도로 몸을 사렸던 미국이 비록 부품 공급이긴 하나 적극 지원에 나섰다는 건 의미심장한 변화다. 나아가 미 당국자는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보내는 것을 반대한 적이 없으며 지원 여부는 각국이 주권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도 말했다. 최근 발표한 새로운 지원 목록에는 구소련제 다목적 헬기 Mi-17과 공격 무기인 곡사포도 포함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우크라이나 전투기 부품 지원은 우크라이나에 더 강력한 무기를 보내는 문제와 관련해 개방성이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공교롭게도 폴란드에선 또다시 전투기 지원 의사를 내비치는 발언도 나왔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마렉 마지에로브스키 주미 폴란드 대사는 이날 비영리단체 워싱턴경제클럽 연설에서 “Mig-29 전투기 이전 아이디어는 여전히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으며 유효한 제안”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