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 시절 시국 사범들을 변호했던 한승헌 변호사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21일 법조계와 시민단체는 슬픔에 빠졌다. 법조계에선 한 변호사는 떠났지만 '한승헌 정신'은 이어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존경받는 법조인을 찾기 힘든 지금 같은 시대에선 특히 그의 의롭고 맑은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 변호사는 군사독재정권 시절 누명을 쓰고 법정에 소환된 양심수들과 시국 사범들을 지켜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는 1965년 5년간의 검사 생활을 끝내고 변호사로 개업한 뒤 남정현 작가의 소설 '분지' 필화 사건(1965), 통일혁명당 사건(1968), 민청학련 사건(1974) 등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굵직한 시국사건을 무료로 변론했다. 그가 맡았던 시국사건만 100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에선 눈엣가시 같은 한 변호사를 억압했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한 변호사는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김규남 민주공화당 의원의 추모 글을 썼다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김대중 전 대통령 내란음모 조작 사건 당시 공범으로 몰려 투옥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음에도 '민주화'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 변호사와 40년 넘게 연을 맺어온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변호사는 '인권변호사'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변호사가 존재하는 근본적 이유가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우리 모두가 좇아야 할 올곧은 삶을 살았다"고 회상했다.
한 변호사는 군사독재정권이 물러난 뒤에는 민주주의 정착에 투신했다. 그는 1988년 5월 시국사건 변호사들이 모인 '정의실천 법조인회'를 모태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창립을 이끌었고, 한겨레신문 창간위원장을 맡았다. 지난해 '한승헌 변호사의 삶: 균형과 품격'이란 책을 펴낸 김인회 감사원 감사위원은 "극렬한 갈등 속에서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 방향을 잡아주셨던 분"이라며 "지금처럼 사회적 갈등이 심각할수록 한 변호사 같은 어른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추모했다.
한 변호사는 2018년 사법부 70주년 행사에서 국민 기본권 보장과 사법개혁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한 변호사는 당시 "독재정권으로부터 압박받는 피고인들 변호를 많이 해줘서 포상을 받은 것 같다"며 "변호사가 열심히 변론한 건 당연한 일이라 (수상이) 쑥쓰럽다"고 밝혔다.
한 변호사는 생전 법조계를 향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그는 "사법부에 대한 외풍 못지않게 법관에 대한 '내풍(內風)'이 더욱 위험하므로 법관들의 굳건한 신념과 노력이 중요하다"며 "특히 정치권력 입장에 맞춰 눈치 보며 재판하는 자기 모독을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많이 했으면 좋겠고,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항상 내야 한다고 했다"며 "저도 그분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고 싶다"고 밝혔다. 민변 소속의 송기호 변호사도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도 마음 한구석엔 늘 웃음이 들어갈 자리를 비워두라고 말하실 정도로 유머감각이 뛰어났다"며 "공익을 위한 변호사가 되라는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살겠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 빈소가 마련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는 이날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국무총리, 김명수 대법원장과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등 각계의 근조화환이 빈소 앞을 가득 채웠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조문이 시작되자마자 빈소에 도착했다. 문 대통령은 유족들과 한 변호사 지인들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문 대통령과 한 변호사는 독재 반대 시위로 구속됐을 때 감옥에서 인연을 맺고, 이후 민주화 운동의 길을 함께 걸었다. 문 대통령은 유족에게 “고인은 사회적으로 아주 큰 어른이셨고 후배 변호사들, 법조인들에게 아주 큰 귀감이 되셨던 분”이라며 “직접 와서 조문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애도했다.
고인과 옥살이를 함께 한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법조계와 출판계, 정부 부처 등 각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이날 오후 7시 40분쯤 빈소에 모습을 드러낸 이 전 대표는 조문 직후 한 변호사의 부인부터 찾아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 전 대표와 고인은 전두환 정권 당시 'DJ 내란음모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후 함께 옥살이를 했다. 빈소를 나온 이 전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같이 감옥살이를 했던 사이라 각별한 관계"라며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몸은 쇠약해졌어도 마음의 에너지는 충만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소리꾼 장사익씨는 "선생님이 지난해 희망과 염원을 담아 '흘러흘러 내 인생의 하류로 흘러 / 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 이제 하늘로 높이 날자 / 그래도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는 내용의 시를 써줬고, 제가 올해 1월 뵀을 때 노래로 불러드렸다"며 고인을 떠올렸다.
한 변호사는 전날 오후 9시쯤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례는 5일장으로 진행되고 25일 오전 발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