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리사의(見利思義). 이익을 보면 의를 생각하라는 뜻이다. 한국 외교사에서 아픈 손가락이라 할 수 있는 대만 단교 전후 과정은 이 고사성어를 떠올리게 한다. 대만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일관되게 한국을 지지하고 지원해 온 나라다. 한국 정부가 국제정치 역학과 지정학적 관계의 변화에 따라 부상하는 중국과 수교를 맺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정부가 대만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이(利)만 앞서고 의(義)를 외면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조희용 전 주캐나다 대사의 '대만 단교 회고: 중화민국 리포트(1990-1993)'는 외교 현장에서 36년을 보낸 베테랑 외교관의 회고이자 그 생생한 기록이다. '하나의 중국'을 고수하는 중국 정부와의 수교 과정, 대만과 체결한 각종 조약의 폐기, 단교, 대사관 철수에 이르는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재현해냈다. 저자의 꼼꼼한 메모, 중국과 대만을 비롯한 국내외의 방대한 기록, 회고록 등 풍부한 자료를 통해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 부상하는 중국과의 이해를 고려할 때 중화민국(대만)과의 단교가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우리 정부는 대만 정부와 국민에게 성의를 다해 최대한 대우하고 세심하게 배려했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의 마지막 단계이자 목표였던 중국과의 수교에 총력을 기울이다 보니 사실상 중국에 외교 주도권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대만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더욱 줄어들면서 대만 문제는 한중 수교의 후속조치, 즉 행정 실무업무로 전락하게 됐다는 것이다. 단교 당시 대만 시위대의 태극기 소각, 우리 대사관에 대한 투석, 한국 유학생에 대한 구타 폭행 사건 등은 대만 국민이 느낀 배신감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저자는 1990년 2월부터 대만 단교(1992년 8월24일) 후인 1993년 2월까지 주중화민국 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난감한 외교 현장에 남아 있던 몇 안 되는 소수 외교관이었다. 그는 "전쟁이나 쿠데타가 아닌 평상시 외교 관계 단절이라는 상황을 맞아 착잡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마지막 후속 업무를 수행했다"고 적었다.
저자는 "올해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중 양국 간에 다양한 행사가 추진되고 있지만 중화민국과의 단교 역시 30주년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중국에 살든 대만에 살든 그들 모두가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중국이자 중국인이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