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문이 닫힌 뒤 '수포자'가 된 민성이 ... 맞벌이 아니었으면 나았을까

입력
2022.04.22 04:30
8면
[돌아온 일상, 남겨진 상흔] <4·끝> 벌어진 학습격차
부모 소득 높을 수록 코로나 이후 사교육 늘어
저소득층 지원 시급... 그래야 자녀 돌볼 여력 생겨

편집자주

코로나19가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일상이 2년여 만에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상처마저 회복된 건 아니다. 제대로 돌보지 않은 상처는 덧나고 곪아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다. 또 다른 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남은 문제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백신 피해자, 후유증, 의료 인력, 교육 문제 등에 대해 4회에 걸쳐 알아본다.




경기 화성시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6학년 민성이(가명)는 아직도 셈을 제대로 못한다. 못하니 의욕도 떨어지고 더 해볼 생각도 없다. 수학을 포기한 사람, 흔히 말하는 '수포자'다.

민성이가 4학년 때인 2020년 당시 담임이었던 이 학교 교사 정모(42)씨는 "그때도 셈이 서툴렀다"며 "32+42라는 문제를 풀기 위해 암산을 못하고 동그라미 서른 두 개와 마흔 두 개를 그린 다음에 하나 하나 세어가며 계산하더라"고 기억했다. 평소 같으면 기본적인 셈만큼은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정씨가 방과 후에라도 민성이를 끼고 1대1 수업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해에 불어닥친 코로나19로 모든 학교의 개학이 연기됐다. 정씨는 민성이와 맞춤수업을 할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셈 못하던 민성이는 수포자로

계속된 원격수업 이후 민성이는 아예 공부를 놓아버렸다. 정씨는 어떻게든 민성이를 다잡아보려 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맞벌이 부모님이 집을 비우면 민성이는 원격수업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정씨의 안타까움이 더 커지는 건 민성이와 같은 반 친구였던 태윤이(가명)와 자연스레 비교되지 않을 수 없어서다. 집안 형편이 비교적 넉넉한 태윤이는 원격수업으로 전환되자마자 영어, 수학 과외를 시작했다. 효과는 서서히 드러났다. 정씨는 "2학기 즈음 태윤이 영어 리딩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고 했다.

집중 과외받은 태윤이는 좋은 학교로 전학

그러더니 태윤이는 경기 분당의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 갔다. 교육열 높다는 분당에서, 학부모들 사이에서 '명문초등학교'로 불리는 학교였다. 정씨는 "1년간 과외로 바짝 선행학습을 했으니 분당에서도 경쟁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이 생긴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코로나19로 학교 문이 닫혔을 때, 한 학생은 '수포자'가 된 반면, 다른 학생은 이른바 '메이저리그'로 진출해버린 셈이다. 정씨는 "물론 민성이가 태윤이처럼 되는 것까진 바라진 않지만, 최소한의 기초학습을 책임져야 할 공교육이 제 역할을 못 한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코로나는 공평하나, 탈출구는 불공평

부모의 소득수준 등 가정 환경의 차이는 학습 격차와 연결된다. 지난해 1월 한국교육개발원이 펴낸 '교육 분야 양극화 추이 분석 연구' 보고서는 소득 하위 20% 집단은 사교육비나 학업성취 등 교육분야 핵심 지표에서 상위 20%에 속할 가능성이 지난 10년간 더 악화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이 같은 격차를 더 크게, 더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은 2020년 도내 800개 학교의 학생(2만1,064명)과 보호자(3만1,042명), 교사(3,860명)를 대상으로 연구한 끝에 '코로나19와 교육 : 학교 구성원의 생활과 인식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형편이 좋은 학생일수록 하루 평균 사교육을 받는 시간이 더 늘었다. 자신의 가정 경제 수준이 높은 '상'에 해당한다는 초등학생은 28.8%가 사교육이 늘었다고 답했다. 반면 '하'는 22.9%에 그쳤다. 이 격차는 중학교(32.9%→26.0%)와 고등학교(33.7%→23.8%)로 올라갈수록 더 커졌다.

반면, 낡고 뒤떨어진 디지털 기기 때문에 원격수업 등 학습에 방해를 받은 경험은 가정 경제 수준이 낮은 '하' 집단 학생이 '상' 집단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이정연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재난의 위험이 모든 학생에게 공평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괴외받는 집은 코로나가 되레 기회

이런 대조적 현상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교육 특구'라 불리는 서울 양천구의 고등학교 1학년생 혜인이(가명)에게 코로나19는 오히려 '기회'였다. 모든 학원을 정리하고 국영수, 물리, 화학 다섯 과목만 집중 과외를 받았다. 한 달에 200만 원이 추가로 들었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혜인이 어머니 이모(46)씨는 "여럿이 공부하는 학교, 학원보다 과외가 우리 아이 적성에 더 맞는 것 같다"며 "솔직히 코로나19로 학교를 못 간 시기에 과외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더 편한 점도 있다"고 했다.



양천구에 이웃하고 있는 금천구의 한 중학교 상황은 180도 다르다. 이 학교는 전교생 300여 명 중 90여 명이 저소득 계층이다. 별도의 학원이나 과외수업을 챙길 여력이 있는 집이 별로 없다. 아니, 그 이전에 생활 자체가 어려운 학생들이 많으니 성적 걱정은 사치다. 식사에서 돌봄까지 해결되던 학교가 문을 닫으니 갈 곳마저 마땅치 않다.

학습격차 대책은 '교육' 아닌 '복지'의 문제

이 학교 교사 유모(44)씨는 그래서 코로나 학습격차 대책은 '교육' 문제 이전에 '복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유씨는 "맞벌이 가정이나 조손, 한부모 가정의 경우 식사를 챙겨주거나 원격수업 때 옆에서 도와줄 조력자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사실상 그냥 방치되는 학생들, 연락도 안 되는 학생들이 많다 보니 이들에게 안부전화를 돌리느라 하루를 다 보낸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학습격차 문제가 제기되면 교육당국은 으레 '보충학습 지원책' 같은 걸 내놓는데, 이런 환경에서는 먹혀들 리가 없다는 얘기다. 유씨는 "코로나19로 자영업자들 피해가 크다는데, 그런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대부분 자영업자"라면서 "자영업자에 대한 재난지원금 지원이 통 크게 이뤄져서 일단 가정 형편이 안정돼야 아이들 문제도 풀릴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윤태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