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지난달부터 금강산관광지구 내 남측 시설물을 일방 해체하는, 재산권 침해에 우리 정부가 계속 해명을 요구하고 있으나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북측이 뚜렷한 설명 없이 남북화해의 상징인 금강산 내 시설물을 멋대로 들어낸 데는 강경 대북정책을 표방한 윤석열 정부 출범을 맞아 남북관계를 원점으로 되돌리겠다는, 강한 의지가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다.
20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통일부는 이달 1일과 11일 판문점 남북공동연락소 채널을 통해 금강산관광지구 내 남측 시설 철거에 대한 충분한 해명과 협의를 북측에 구두 제안했다. 하지만 북측은 정부의 두 차례 요구에도 여전히 응답하지 않고 있다. 8일엔 “강한 유감” 표명과 함께 “우리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일방적 조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정부의 공개 입장도 나왔으나, 북측은 개의치 않고 해체 작업을 강행하고 있다. 미국 위성사진업체가 17일 촬영한 사진을 보면, 아난티 골프장 리조트 주변 8개 건물은 외벽이 모두 해체돼 콘크리트 골조를 드러냈고, 7층 높이의 해금강호텔도 윗부분이 모두 사라져 1~3층가량만 남아 있다. ‘초고속’ 해체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왜 남측 시설 철거를 서두를까. 우선 남북관계를 ‘리셋(resetㆍ재설정)’하기 위한 북한 수뇌부의 의지가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내달 대북 압박에 초점을 맞춘 남측 보수 정부가 들어서는 만큼, 남북협력의 상징물 철거로 “해빙 무드는 끝났다”는 메시지를 던지려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윤석열 정부를 옭아매 북측에 유리한 남북관계를 재정립하겠다는 목적도 있다. 최근 선전매체를 동원해 취임도 하지 않은 윤 당선인을 지속적으로 비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날 통일의 메아리는 윤석열 정부의 조각 인사들을 겨냥해 “전문성이나 능력도 없이 윤석열과의 인맥만을 자랑하는 얼치기, 숙맥들뿐”이라고 폄하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경제개발 시간표’와도 관련이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금강산지구를 “‘우리 식’으로 건설하라”고 지시했다. 관광단지를 이전보다 낫게 독자 개발해 최고지도자의 치적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북한은 향후 남북관계 추이에 따라 금강산관광지구 개발 성과를 내부 결속을 위한 체제 선전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