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만나볼 독자'를 찾습니다

입력
2022.04.21 04:30
21면
출판사 너도나도 '가제본 서평단' 모집
입소문 중시하는 '바이럴 마케팅' 영향
책 문화 향유하는 독자 서비스 일환


내달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책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는 지난해 SNS를 중심으로 화제를 모았던 ‘실버 취준생 분투기’ 작가 고 이순자씨의 유고집이다. 제7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작인 ‘실버 취준생 분투기’는 1953년생인 이순자씨가 청소부, 요양보호사, 어린이집 보조교사 등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며 겪은 일을 그린 논픽션이다. 노년 여성의 구직 현실을 담담하게 그린 이 글로 작가 데뷔를 한 이씨는 당선 한 달 뒤 세상을 떠났다.

휴머니스트는 이씨 가족 동의를 받아 만든 유고집 출간을 앞두고 이달 가제본 서평단 이벤트를 진행했다. 황서현 휴머니스트 주간은 “글 자체의 울림이 워낙 큰 책이라, 출간 전 가능한 많은 독자들이 읽고 입소문을 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제본 서평단 이벤트를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가제본 서평단'은 말 그대로 정식 출간 직전 가제본 상태에서 미리 읽어볼 독자를 모집하는 것을 일컫는다. 대부분의 도서 마케팅이 출간 이후에 가능한 것과 달리 가제본 서평단은 출간 이전에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마케팅 수단 중 하나다. 가제본 이벤트를 통해 먼저 책을 읽어본 독자들이 SNS에 남기는 서평을 통한 홍보가 주목적이다.

한 출판사 마케팅 담당자는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매할 경우 다른 독자들이 남긴 리뷰를 참고하게 되는데, 가제본 이벤트를 진행하면 출간 직후부터 서평이 달리기 때문에 초기 입소문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직접 상품을 경험한 사람들의 ‘바이럴(입소문)’이 주요 마케팅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출판계가 '가제본'까지 동원하게 된 것이다.

모든 책이 다 가제본 서평단을 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출판사마다 기준은 다르지만 어렵고 복잡한 책보다는 문학이나 에세이처럼 '감상'을 남기기 좋은 도서들이 주로 대상이다. 최근에는 가제본 이벤트가 대중화되며 논픽션이나 비문학 도서까지 폭넓게 적용하는 추세다.

독자 입장에서는 책을 가장 먼저 읽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명 저자 도서의 경우 ‘소장용’으로 신청하는 독자도 여럿이다. 누구나 살 수 있는 정식 출간본과 달리 가제본은 '한정판'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신인이거나 유명하지 않은 작가의 경우 저자를 숨긴 ‘블라인드 가제본’ 이벤트를 하기도 한다.

단순히 출간 예정인 책을 그대로 제공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대개는 가제본 이벤트를 위해 책을 따로 기획한다.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역시 책 내용 일부와 윤성희 소설가, 박연준 시인 등의 산문을 더해 이벤트용 도서를 따로 제작했다. 그렇다 보니 출간 도서로 하는 이벤트보다 비용은 더 들 수밖에 없다. 앞으로 생산 계획이 없는 책을 이벤트를 위해 소량으로 인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손무원 창비 마케팅 부장은 “책의 일부만 제공하는 것은, 책은 작가의 자산이기도 하니 전체 내용은 구매해 봐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나아가 독자들이 책을 두고 향유할 문화를 제공하는 ‘독자 서비스’의 측면에서 가제본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손무원 부장은 “2010년대 들어 출판사가 SNS를 통해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출판 마케팅 역시 독자와의 접점을 늘리는 것이 중요해졌다"며 “가제본 이벤트의 경우 출판사에서 독자에게 제공하는 독자 서비스의 일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책을 제공받은 독자 중에 서평을 SNS에 게재하는 비율은 60% 내외다. 그러나 서평을 게재하지 않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출판사의 충성 독자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황서현 주간은 “가제본 이벤트는 가장 열성적인 독자들과 나누는 ‘첫 번째 눈맞춤’”이라며 “유명인의 추천사 못지않게 책을 사랑하는 독자 개개인의 힘이 출판계에서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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