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뼘짜리 계단, 누군가에게는 장벽…스티커 속 사람이 보이나요?

입력
2022.04.20 07:10
20일 장애인의 날 맞아 '배리어 프리(BF) 알리기'
이제석광고연구소·한국장애인고용공단 캠페인
깜찍한 스티커로 재치 있게 BF 표현
이제석 대표 "BF는 우리 모두를 위한 배려"

19일 오후 교통의 중심지 서울 중구 서울역에는 짐 가방을 들고 바삐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서울역을 향한 주된 진입로에는 계단과 에스컬레이터가 놓여 있다. 특히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난 탓에 행인들은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풍경 속, 구석진 계단 한편이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한 뼘 크기의 스티커들이 곳곳에 붙어 있던 것. 스티커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이 산을 오르는 듯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등산 같은 계단 오르기

스티커를 지나쳐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는 행인이 있는가 하면, 목발을 짚은 중년 남성은 한 계단씩 쉬엄쉬엄 가야 했다. 두 노인은 하나의 짐 가방을 나눠 들고 오르기도 했다. 굽 있는 구두를 신은 채 큰 캐리어를 끌고 가는 여성은 힘겨운 기색이 뚜렷했다. 바퀴를 끌 수 있는 경사로가 있었지만 생각보다 가팔라 가방이 몇 번 미끄러지자 여성은 결국 손으로 가방을 들었다. 간간이 휠체어를 타거나 유모차를 끄는 이들은 계단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걸음을 멈추고 스티커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이들도 있었다. 스티커에는 '한 뼘짜리 장벽?'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양손 가득 짐을 든 20대 여성 A씨는 "계단으로만 올라오려니 이렇게나 힘든데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은 아예 이용하지도 못하겠다고 생각했다"면서 "계단의 폭도 넓은데 한 면이 경사로였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BF는 우리 모두를 위한 배려"

서울역 계단에 붙은 스티커의 정체는 이제석광고연구소가 장애인의 날을 맞아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진행'배리어 프리(BF) 알리기 캠페인'의 하나다. BF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의 줄임말로 장애인, 임산부, 노인,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이 장애물 없이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BF 인증제도는 공공장소의 편의시설 설치 및 관리 여부를 평가하는 제도로, 2008년 시작했다. 보건복지부와 국토교통부가 인증 기관을 지정하며 현재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을 비롯한 8개 기관이 인증을 준다. 2015년 의무화된 이후 필수 인증 대상은 늘어나고 있다.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공원,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 등이 해당한다. 2021년에는 민간이 관리 주체인 초고층 건축물과 지하연계 복합 건축물도 인증을 받도록 법이 개정되어 사각지대로 꼽혔던 민간 시설물을 평가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14년이 되었지만 BF 인증제도는 생각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BF인증팀 김기종 과장은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통해 "BF 인증제도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가 여전히 낮다"면서 "(관련 법이) 장애인의 편의만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번 캠페인을 통해 모두가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하기 위한 제도라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제석광고연구소의 이제석 대표는 "책자의 내용 중 'BF는 소수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배려'라는 글귀가 이번 캠페인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삽화로 쉽게 이해하는 BF 개념과 인증제도

이번 협업은 지난해부터 진행되었던 BF 인증제도 홍보 캠페인의 연장선에 있다. 김 과장은 "이제석광고연구소가 만든 홍보 책자에 대한 반응이 좋아 이번 캠페인도 함께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제석광고연구소는 2009년에 설립된 광고 연구기관으로 그 동안 다양한 기관과 협력하며 공익광고를 제작해 왔다. 과거에도 일반인이 장애인을 위한 도시 환경 디자인을 생각해보도록 하기 위해 "누군가에게는 이 계단이 산을 오르는 듯이 힘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아 에베레스트산 그림으로 지하철 계단을 뒤덮은 적 있다.

이제석광고연구소의 서민규PD는 "만화 같은 그림체로 스티커를 재치 있게 제작함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신경 썼다"며 "전국의 지하철역이나 계단 등 장애물이 존재하는 구역에서 배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티커의 QR코드를 찍어 접속하면 삽화와 함께 쉽고 재미있게 BF 인증제도를 소개하는 홍보 책자를 만나볼 수 있다.

장애인의 날은 매년 4월 20일로,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지정된 법정기념일이다. 장애인을 향한 시혜와 동정의 시선을 거부하고 장애인의 권리를 쟁취하자는 의미에서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부르기도 한다.



김가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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