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대표하는 결단과 행동이야말로 민주당에 더없이 필요한 소중한 정신이자 가치로, 성범죄 대책 및 여성정책은 물론 사회 약자·청년 편에서 정책 전반을 이끌어 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패배 직후인 지난달 13일 박지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할 당시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이 했던 말이다. 3·9 대선에서 2030세대 여성 표심을 민주당으로 결집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20대 여성 정치 초년생에게 '172석 거대 정당의 쇄신'이란 중책을 맡기며 기대를 표한 것이다.
당내 기득권인 86세대와 친문재인계 그늘에서 벗어나 당의 미래 자산인 청년, 특히 2030세대 여성 민심을 반영해 달라는 주문이 반영된 것으로 읽혔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났지만, 박 위원장의 쓴소리는 점점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고 있다. 당내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지도부와 결이 다른, 상식적인 견해를 제시했음에도 묻히기 일쑤다. 민주당의 쇄신과 재건을 위한 '쓴소리'를 듣겠다던 영입 의도가 그새 퇴색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6·1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공천은 민주당 입장에선 첫 쇄신 시험무대다. 박 위원장이 강조한 것은 '자성론'이었다. 지난달 30일 "부동산 정책 실패에 책임 있는 분들, 부동산 물의를 일으켰던 분들은 스스로 나서지 말아야 한다"면서다. 집값 폭등 당시 '똘똘한 한 채' 논란을 일으킨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임대차 3법 통과 직전 '전세 보증금 과다 인상' 논란의 주인공인 박주민 의원을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노 전 실장은 충북지사, 박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를 각각 노리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정작 민주당은 지난 19일 노 전 실장을 충북지사 후보로 단수 공천했다.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똘똘한 한 채 논란 당시 남겨둔) 노 전 실장의 서초구 주택은 초선 때 아들과 함께 숙소로 사용하던 아파트인 데다 현재 다 처분해 무주택자로 있다"며 "박 위원장의 문제 제기 취지는 알겠으나, 이 정도 소명이 되었다면 더는 시간을 끌지 말자고 결정했다"고 공천 배경을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이날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공천에 반대 입장이란)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고 반발했다.
서울시장 출마자들도 박 위원장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박 위원장은 지난 8일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 "민주당을 다시 패배의 늪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되돌아봐야 한다"고 경고했다. 송 대표는 이에 아랑곳없이 17일 출마 선언식을 열었다. 지난해 임대차 3법 통과 직전 임대료를 올려 받아 '내로남불' 논란이 된 박주민 의원도 서울시장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다만 민주당 전략공천관리위원회는 19일 송 전 대표와 박 의원을 서울시장 후보 공천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은 20일 페이스북에 “노영민 (충북지사) 후보자는 공천하고, 송영길 후보자는 탈락시키겠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판단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과도한 '이재명 마케팅'에 대한 경고도 소용없었다. 박 위원장은 지난 8일 이 전 후보와 친분을 강조하는 지방선거 출마자들에게 "(이 전 후보를) 마케팅 전략으로 삼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송 전 대표를 포함해 경기지사 출마를 선언한 조정식 의원 등은 경쟁적으로 이 전 후보의 팬 카페에 '인증글'을 올리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강행 분위기에 박 위원장의 목소리는 점점 묻히고 있다. 그는 이날 MBC 라디오에서 "검찰개혁 그 자체를 우려하는 것은 아니다. 검경 수사권 분리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속도를 중요시하다가 방향을 잃을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검찰개혁 이슈에 모든 현안이 빨려들어갈 경우에 대한 우려를 전한 것이다.
그럼에도 박홍근 원내대표는 "검찰 기능의 정상화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다"며 검수완박 입법 의지를 더욱 불태우고 있다.
다만 박 위원장의 한 달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지방선거에서 청년·여성 30% 공천 기준을 정한 것이 대표적인 성과다. 박 위원장은 전날 "시도당에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청년·여성 후보자를 발굴해달라"며 "30%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지역위원장과 시도당위원장에게 페널티를 주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