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형 산불이 빈발하는 배경에 산림청의 숲가꾸기 사업이 자리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산림을 건강하게 관리하겠다면서 인공 조림이나 천연림 관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일어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보다 생태적인 관점에서 숲을 관리하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지난달 대규모 산불 피해를 입은 동해안 산림은 조림보다 자연 복원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
19일 환경운동연합과 생명다양성재단에 따르면, 두 단체는 전날 '대형산불 기후재난을 막기 위한 생태적 숲관리 전환 모색'을 주제로 환경 전문가와 단체 관계자가 참여한 토론회를 공동 주최했다. 1998년부터 25년째 시행되고 있는 숲가꾸기 사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자리였다. 정부는 외환위기 사태로 급증한 실업자를 흡수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 사업을 시작했고, 숲의 연령과 상태에 따라 가지치기, 어린나무 가꾸기, 솎아베기, 천연림 가꾸기 등을 시행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숲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조림사업이 산불 확산에 취약한 숲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연숙 강원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이번 경북 울진 산불 피해지역은 인공적으로 조성한 전형적인 어린 숲"이라며 "어린 숲은 키 작은 소나무들이 밀도 높게 심어져 있어 대형 산불에 취약하다"고 말했다.
산불을 유발하는 건조한 기후 또한 숲가꾸기 사업과 무관치 않다는 주장도 나왔다. 특히 소나무림을 육성해 송이버섯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취지로 2000년부터 '송이산 환경개선 사업'이 시행되면서 수분 함유량이 높은 활엽수가 대거 베어졌다는 것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지난해 진행된 숲가꾸기 사업의 상당 부분은 소나무 숲 사이에 들어찬 활엽수를 자르는 일이었다"며 "잘 타지 않는 활엽수가 남김없이 잘린 통에, 이번 (동해안 지역) 산불에서도 숲가꾸기 사업을 한 곳이 집중적으로 소실됐다"고 진단했다.
동해안 산불 복구에 투입할 예산 4,170억 원 가운데 주택 복구 지원금 51억 원(1.2%)을 제외한 예산은 긴급 벌채와 식재 등 산림 복구에 쓸 것이란 정부 방침도 도마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산불 피해 구역의 인공 조림은 복원 속도가 더딜뿐더러 임지생산력 또한 낮다고 지적했다. 정연숙 교수는 "1996년 강원 고성 산불 피해 지역에 형성된 인공 조림지와 자연복원 숲을 비교해보면 자연복원이 산불에 대한 저항성이 높고 복원도 2배 가까이 빨랐다"며 "아직 살아 있는 나무까지 모두 베어버리는 조림 사업은 예산 낭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산림청이 숲을 인위적인 관리 대상이 아닌 생태학적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숲가꾸기 사업이 20년 이상 지속돼 왔지만, 사업 저변엔 목재 생산을 위해 나무를 심어 왔던 과거 인식이 여전히 깔려 있다는 것이다. 최창용 강릉원주대 겸임교수는 "현행 숲가꾸기 사업 근간은 1960년대의 산림 조사 방법"이라며 "오늘날 녹지 환경에 걸맞은 조사 방법을 새롭게 개발해야 산림을 생태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