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억눌렸던 일상이 2년 1개월 만에 돌아왔다. 오랜만에 누리는 자유에 사람들은 이미 들뜬 모습이다. 그러나 의료·방역 전문가들은 이르면 가을, 늦어도 겨울쯤 재유행이 올 수 있기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앞으로 6개월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K방역의 성적표도 달라진다. 일상회복 분위기에 휩쓸리면 자칫 지난 2년의 실수를 되풀이할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마지막 날인 17일 전문가들은 6개월간의 핵심 과제로 일반 의료체계의 연착륙을 꼽았다. 환자들이 진료받을 권리를 침해받지 않도록 의료체계 전환 과정의 빈틈을 메우자는 얘기다. 그래야만 '병상 대란'과 빈 병상을 찾아 헤매는 '떠돌이 환자' 발생을 막을 수 있다.
떠돌이 환자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가 진료 거부다. 지난 유행 동안 원내 감염을 우려해 확진 환자를 받지 않는 병원이 속출했다. 환자는 자신을 받아줄 병원을 수소문해야 했고, 치료가 늦어져 상태가 나빠졌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찾아 돌아다니다 사망하는 환자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일부 병원의 '환자 가려 받기'를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코로나19 환자가 언제 어디서든 진료받을 수 있어야 일반 의료체계로 전환됐다고 볼 수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병원이 확진자를 기피하니 정부가 돈으로 병상을 메웠는데, 이렇게 대응한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응급의료센터를 갖춘 종합병원이 적극적으로 확진 환자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의료센터가 전국에 100여 개 있는 만큼, 지역 간 의료 격차도 일부 해소된다.
대형 정형외과·산부인과 같은 2차 의료기관이 확진자를 받지 않은 것도 의료체계에 구멍을 키웠다. 박명하 서울시의사회 회장은 "확진자 진료에 참여하는 동네 의원은 늘고 있지만, 2차 의료기관 참여는 적다"며 "이러면 일상회복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환자 이송 체계도 정비해야 한다. 어느 병원에 가면 바로 치료받을 수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병원을 알아보고 방역당국에 보고하는 시간을 줄이면 환자의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장은 "구급차를 타면 환자를 받는 병원을 알아보는 데만 몇 시간이 걸린다"며 "병상 수와 환자 수용 여력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행 규모가 커질 조짐을 보이면 즉시 비상조치를 발동할 수 있게 손봐야 한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중증, 준중증 환자를 어떻게 대응하면 되는지 경험이 쌓였다"며 "이를 바탕으로 판을 다시 짜야 한다"고 했다. 조동호 명지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의료 정책 전환 타이밍이 늦어 늘 문제가 됐다"며 "확진자 규모마다 병원·병상을 어떻게 운영할지 대략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오미크론 대유행의 교훈 중 하나는 경증 환자가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확진자의 90% 이상이 경증이라 재택치료를 받았는데, 집에서 상태가 갑자기 악화한 탓에 우왕좌왕하는 환자가 많았다. 제때 치료를 받고 약을 복용하면 경증에서 끝낼 수 있지만, 시기를 놓치면 위중증으로 진행돼 문제가 커진다.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지역별 경증 응급 클리닉'을 제안했다. 경증으로 분류된 환자가 증상이 심해질 경우 근처 응급실이 있는 병원에서 대응하자는 것이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상급종합병원 내 경증 환자가 적어야 중환자를 볼 여력이 있다"며 "응급의학 전문의가 있는 병원이 상태가 나쁜 경증 환자를 맡아주면 의료체계에 어느 정도 여력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응급의학회는 일부 지역에서 응급환자 대면치료 클리닉 시범사업을 진행한 뒤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