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 '절름발이'… 법원 "장애인 혐오 표현 맞지만 법적 문제는 없어"

입력
2022.04.15 20:00
장애인들, 국회의원 6인 상대 소송 냈지만 패소
"피해자 특정되지 않고 장애인 비하 의도 없어"


'외눈박이' '절름발이' 등은 장애인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키는 표현이지만, 국회의원이 이런 발언을 했더라도 법적 책임까지 질 사안은 아니란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3부(부장 홍기찬)는 15일 열린 장애인 차별구제소송 선고 공판에서 장애인들이 제기한 소송을 기각하거나 각하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조태흥 활동가 등 장애인 5명은 장애인의 날인 지난해 4월 20일 전·현직 국회의원 6명과 박병석 국회의장을 상대로 차별구제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과 논평 등을 통해 '외눈박이 대통령(곽상도)', '절름발이 정책(이광재)', '정신분열적 정부(윤희숙·조태용)', '집단적 조현병(허은아)', '꿀 먹은 벙어리(김은혜)' 등 표현을 사용한 정치인들에게 100만 원씩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박병석 국회의장에는 이들을 징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정치인들의 이 같은 발언이 장애인 혐오 표현이 맞고, 국회의원들이 이러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장애인들이 상당한 상처와 고통,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란 점은 인정했다. 면책특권을 받을 수 있다는 허은아 의원 주장에 대해서도 "기자회견 발언이더라도 직무와는 아무 관련이 없거나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 면책특권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이들의 발언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봤다. 명예훼손과 모욕은 피해자가 특정돼야 하는데 장애인이나 원고를 향한 발언이 아니었고, 장애인을 비하할 의도가 없었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재판부는 같은 이유로 이들의 발언이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정한 차별 행위에 해당되지도 않는다고 봤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 또는 장애인 관련자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이나 행동을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명예훼손과 모욕에 대한 과도한 책임 추궁이 정치적 의견 표명이나 자유로운 토론을 막는 수단이 될 수 있다"며 "'표현의 자유 보장'과 '인격권 보호'라는 두 법익이 충돌할 때는 면밀히 비교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박병석 국회의장에 이들을 국회 윤리위에 회부하고, 향후 이런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국회규칙 제200호)을 만들어달라는 요구에 대해선 각하 결정을 내렸다. 박 의장이 국회의장 지위에 있지만, 국회의원 처벌 또는 이를 법제화할 규칙을 새로 만들 권한은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회법에 따르면 박 의장이 국회의원 징계안을 국회 윤리특위에 회부할 수는 있지만, 징계는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윤리실천 규범 제·개정도 국회 운영위원회와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조태흥 활동가는 선고 직후 "정치인들의 장애인 비하 발언이 계속돼 왔고, 국회의장도 책임이 있다는 측면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며 "법원 판결 역시 장애인들 마음에 큰 상처를 주는 결과라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강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정책국장도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장애인 비하 발언을 일삼고 있어 법원으로 간 것"이라면서 "이번 판결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포함해 정치권의 장애인 차별·혐오 조장 발언에 면죄부를 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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