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인파로 붐비는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 8번 출구, 택시 한 대가 섰다.
운전 경력만 25년이 넘는 베테랑 운전사이자 중증 청각장애를 가진 신명호(55)씨가 모는 '고요한 택시'다. 택시에 오르자 뒷좌석에 설치된 태블릿 PC에 '안전벨트를 매주세요'라는 문구가 떴다. 청각장애인인 기사와 승객의 의사소통을 돕는 태블릿 PC다. 얼른 벨트를 매고 자리를 잡자 신씨는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보였다.
"(택시 운전사로) 일하려고 하는 사람은 많은데, 할 수가 없어요."
고요한 택시(운영사 코액터스)에서 기사로 일하는 청각장애인은 신씨를 포함해 21명.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신청해서 부를 수 있다. 코액터스는 올해 내로 청각장애인을 포함해 총 100명의 택시기사를 채용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의 등록 청각 장애인 수는 2020년 기준 39만5,000명에 달한다. 그런데도 고요한 택시가 구인난을 겪는 이유는 비현실적인 제도와 무심한 당국 탓이다.
자동차 운전면허와 달리 택시운전 자격시험은 수어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신씨 역시 "인천에서 택시운전 자격증을 이미 취득했는데도 서울지역 시험에서는 서너 번 탈락했다"고 전했다. 선천적으로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나 수어를 쓰는 그는 "시험이 어렵다기보다는 한국어 문장력이 낮아 문제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인터뷰도 수어 통역사가 대동해서 가능했다.
신씨는 여러 번 낙방의 고배를 마신 후 다른 지역의 택시운전 자격증이 있다면 시험 과목 수를 줄여 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고, 그제야 합격했다.
국내 청각장애인이 음성기반 문자인 한글을 배운다는 건 비장애인 한국인이 영어를 배우기보다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다. 모국어를 한국어가 아니라 수어로 쓰는 이들에게 한글은 그저 외국어일 뿐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수어 사용 실태조사'(2017년)에서도 문자를 전혀 또는 거의 이해 못 한다는 청각장애인은 26.9%였다.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답변도 42.6%나 됐다. 문자를 완벽히 이해하는 청각장애인은 10명 중 3명도 안 된다는 의미다.
신씨는 "학교를 다니지 않은 청각장애인은 비문해자인 경우가 많은데 비문해자는 (택시운전 자격시험에) 여러 번 응시를 해도 번번이 불합격"이라고 전했다. 많으면 30번 이상 낙방하는 사례도 있다.
실제로 자격 취득 전 주어지는 3개월 임시 택시운전 자격으로 고요한 택시에서 일하다가 끝내 합격하지 못해 운전대를 놓는 청각장애인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에 한국교통안전공단과 국토교통부를 대상으로 관련 진정을 낸 청각장애인 이병도씨도 같은 이유로 회사를 떠났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측에서는 진정 이후 지난해 한 차례 수어 지원을 통한 자격시험을 치렀고, 올해도 준비 중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수어 지원 방식을 놓고 논의 중이라 올해는 아직 자격시험이 열리진 않았다. 또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라 최초 신규 종사자는 16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청각장애인은 자격증을 겨우 취득해도 이를 받기가 어렵다. 지방자치단체의 관할이라 지역마다 수어 통역여부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2020년 친구의 소개로 고요한 택시의 운전사로 일하기 전까지 생계를 위해 여러 일터를 전전한 신씨는 단 한 번도 '정규직'이었던 적이 없었다.
농학교를 졸업하고 가진 첫 직장에서는 금속을 세공했다. 학교에서 소개받은 직업이었으나, 실습 한 번 해본 적 없는 일이라 헤매다 퇴사했다. 이어 친척의 회사를 거쳐 건설 현장에서 10년을 지냈다. 그는 "벌이는 적지 않았지만 워낙 위험한 일이라 추락 사고를 겪을 뻔하기도 했다"면서 "지금은 정규직이고 월급제라 업무에 부담감도 없이 마음 편히 일한다"라고 했다. 연년생인 자녀들도 신씨의 새 직장을 자랑스러워한다는 설명이다.
"체력이 다할 때까지, 건강이 따라주면 80세가 되더라도 택시운전을 하면서 더 많은 승객을 만나고 싶다"라는 것이 신씨의 목표다.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해 수어로 '감사하다'라고 말하거나 손가락 하트로 마음을 표하는 승객의 모습은 그에게 행복이자 자부심으로 남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는 그의 택시에는 '자립'을 의미하는 수어가 그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