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부, "소련이 북중 설득해 달라"... 남북 유엔 동시 가입 막전막후

입력
2022.04.15 14:38
외교부, 1991년 외교문서 공개

1991년 한국의 숙원이었던 유엔 가입을 둘러싸고 북한과 치른 막후 외교전이 15일 공개됐다. ‘남북한 단독 가입’을 원한 한국은 1년 전 수교한 옛 소련을 통해 중국과 북한을 설득하려 하는 등 전방위 외교를 편 것으로 드러났다. ‘단일의석 공동 가입’을 주장해온 북한 역시 각국을 접촉하며 남측과 맞섰다.

외교부가 이날 공개한 1991년 외교문서 2,466권(40만5,000쪽)을 보면, 그해 남북 유엔 동시 가입을 위해 정부가 진행한 치열한 교섭이 고스란히 담겼다. 한국은 1948년 정부수립 후 수차례 유엔 문을 두드렸으나 상임이사국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좌절됐다. 그러다 1990년 소련과 수교하는 등 북방외교 노력 끝에 이듬해 9월 18일 유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북한과 함께 회원국이 됐다. 당시 북한은 남북 유엔 동시 가입이 분단 고착화로 이어진다며 반대했지만, 소련 등이 한국 손을 들어주면서 결국 기존 입장을 거두고 가입 신청서를 냈다.

외교문서에서 두드러진 내용은 소련을 활용한 우리 정부의 설득전이다. 1991년 1월 주미한국대사관이 작성한 미 국무부 중국과 부과장 면담 보고에 따르면 같은 달 제1차 한ㆍ소련 정책협의회 참석차 방한한 이고르 로가초프 소련 외무차관은 귀국길 중국에 들러 “한국이 1991년 중 유엔 가입을 희망해 소련으로서는 중국이 이에 반대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전했다. 소련은 비슷한 시기 주소련한국대사관에 “(한국이 유엔 가입을 신청할 경우) 중국의 거부권 행사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는 분위기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해 4월 이상옥 당시 외무부 장관도 로가초프 차관을 만나 “북한에 한국과 함께 유엔에 가입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와 궁극적 통일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명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북한도 가만 있지는 않았다. 각종 동향 보고 문건에는 김영남 당시 북한 부총리 겸 외교부장이 1991년 3월 리비아를 찾아 한국의 단독 가입을 반대하는 북한의 입장을 지지해 달라고 요청하고, 북한 대사가 예멘 외무성 관계자를 만찬에 초대해 남북 단일 의석 가입 필요성을 설명한 사실이 적시돼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 분위기는 이미 한국 쪽으로 기울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르웨이 측은 한국에 “북한 대사가 찾아와서 유엔 문제를 설명했는데, 한국이 유엔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반문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1991년 외교문서에는 이 외에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정상외교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1990년대 초 한국 인권상황 △1967년 발효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관련 내용도 들어 있다. 공개된 외교문서 원문은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외교사료관에서 열람할 수 있다.

정준기 기자
김민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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