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 미국 연방상원은 커탄지 잭슨(Ketanji Jackson)을 연방대법관으로 인준했다. 미국이 건국된 지 233년, 흑인노예가 해방된 지 157년, 그리고 여성 참정권이 보장된 지 102년이 지나서야 최초의 흑인여성 연방대법관이 탄생했다.
잭슨 대법관 예정자는 1970년 워싱턴D.C.에서 태어나 플로리다주에서 성장했다. 하버드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이 대학 로스쿨을 1996년 졸업했다. 2010년까지는 워싱턴에서 다양한 법률 커리어를 이어갔는데, 이번에 은퇴하는 브라이어 대법관의 재판연구관을 지냈으며 특히 국선 변호인을 했던 이력이 특이하다. 2010년 오바마 대통령에게 연방양형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지명돼 관직에 들어섰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워싱턴 소재 연방지방법원 판사를 지냈다. 작년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같은 지역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지명되었다가 이번에 연방대법원 대법관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시절 행정부의 보수 정책에 수차례 제동을 거는 등 그녀의 판결은 꽤나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최초의 흑인여성 연방대법관이라는 타이틀은 사실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흑인여성은 전체 미국 여성의 12.9%를 차지하지만 현직 연방판사 중에는 고작 3%뿐이다. 베이커 모틀리 판사가 첫 흑인여성 연방판사로 지명받은 때는 불과 56년 전인 1966년이었고, 역사를 통틀어 연방지방법원 판사의 1.8%, 연방항소법원 판사의 1.6%만이 흑인여성이었다.
흑인여성 연방판사가 유독 적은 것은 공화당 대통령이 지명을 꺼렸던 이유가 크다. 지난 50년 동안 민주당 대통령은 4년 임기당 평균 12명 정도의 연방판사를 흑인여성으로 지명했지만, 공화당 대통령은 임기당 겨우 평균 1.4명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총 26명을, 그리고 바이든 현 대통령은 1년 조금 넘은 기간 동안 15명이나 흑인여성 연방판사를 선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2명, 레이건 대통령의 1명과 상당히 대비된다.
그런데, 이와 함께 이번 상원 인준과정에서 나타난 두 가지 특징도 주목할 만하다. 첫째, 인준 표결이 지극히 당파적으로 나뉘었다. 모든 민주당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졌지만 공화당 쪽 찬성은 겨우 3명뿐이었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 87대 9, 96대 3으로 통과된 사례는 너무 오래되었다고 치더라도, 오바마 대통령 시절 63대 37, 68대 31과 비교해도 지나친 감이 있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 시절 시작된 것인데, 연방대법원이 매우 당파적인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면서 대법관의 이념과 당파성도 같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2017년 연방상원 다수당이었던 공화당이 연방대법관 인준과정에서 필리버스터를 허용하지 않도록 의사규칙을 바꾸면서, 대통령이 더 이상 야당 소속 상원의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요인도 있다.
둘째, 인준청문회 과정에서 '간접적인 흑인 차별성 발언(racially coded language)'이 의도적으로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을 차용한 유아용 도서를 들고 나와서, "아이들이 인종차별주의자인가?"라고 질문했다. 조쉬 하울리 상원의원은 잭슨 판사가 아동 포르노 범죄자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두 경우 모두 특정 인종을 차별하는 명시적 표현을 쓰지는 않으면서도 '흑인여성은 범죄에 관대한 과격 극단주의자'라고 암시하는 목적이 담겨 있다. 포스트 트럼프 시대 공화당의 민낯인 셈이다.
시작부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쓴 잭슨 대법관이 그녀의 판결문으로도 역사의 큰 획을 긋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