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갈아넣는 K방역'이라던 아우성, 다음엔 바뀔까

입력
2022.04.21 10:00
8면
[돌아온 일상, 남겨진 상흔]<3> 숨은 현장 일꾼의 호소

편집자주

코로나19가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일상이 2년여 만에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상처마저 회복된 건 아니다. 제대로 돌보지 않은 상처는 덧나고 곪아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다. 또 다른 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남은 문제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백신 피해자, 후유증, 의료 인력, 교육 문제 등에 대해 4회에 걸쳐 알아본다.


"사람을 갈아 넣는 방역이다." "우리를 숫자로만 보지 말아달라."

2년 남짓 코로나19 기간 동안 방역과 의료 현장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졌던 아우성이다. 의료진은 물론, 역학조사관, 임상병리사, 요양보호사, 응급구조사 등 거의 전 분야에서 "사람이 없다"는 말이 반복됐다. 안타깝게도 대답은 "어려운 사정 알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뾰족한 수가 없으니 조금만 더 희생해달라"에서 맴돌았다.

또 닥칠지 모를 팬데믹(pandemic)에 대비해 인력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지금부터라도 하나둘씩 갖춰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규모만 늘리는 게 해결책은 아닌 이상, 예비군 형태로 만들어두면 어떠냐는 제안도 나온다.

'방역 최전선' 역학조사관, 아직도 정원 못 채웠다

방역 최전선에서 뛰는 역학조사관부터 부족하다.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은 정부는 역학조사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2020년 △질병관리청에 100명 이상 △시·도에 2명(1명 의사) 이상 △인구 10만 명 이상 시·군·구에 1명 이상, 의무적으로 역학조사관을 두도록 했다.

하지만 이 의무는 지켜지 않았다. 질병청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 이상 시·군·구 중 16곳에는 역학조사관이 단 1명도 없다. 질병청 소속 역학조사관은 정원미달이다.

특히 방역 계획과 전략을 짜는 핵심 전력인 '의사 출신' 역학조사관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현재 전국 역학조사관 532명 중 의사면허 소지자는 66명(12.4%)뿐이다. 그나마 이들 대부분이 군입대를 대신하는 공보의다 보니 경험이 쌓이질 않는다.


이는 역학조사관의 처우가 열악해서다. 의사 출신 역학조사관은 주로 가급 전문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되는데, 쉽게 말해 2년 단위 계약직이다. 질병청이 2020년 채용 당시 최소 연봉을 6,100만 원에서 1억1,700만 원으로까지 올렸지만 역시나 정원 미달이었다. 전병율 차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승진이나 발전 가능성 같은 비전이 없으니 지원이 없고, 역학조사관의 경험이 쌓이질 않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열악한 처우에 요양보호사들도

사망, 중증화 위험이 높은 고령층을 집단으로 돌봐야 했던 기관 요양보호사 부족 문제도 컸다(관련기사 ☞ "코로나 집단감염에 말라 죽어 갑니다" 요양시설의 절규). 하지만 의외로 요양보호사는 부족하지 않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만 136만8,699명에 이른다. 다만 2020년 기준 실제 활동하고 있는 요양보호사는 45만970명에, 그것도 요양시설에서 일하는 이들은 7만6,011명에 그쳤다.

자격증은 따두지만 굳이 일하진 않으려는 것 역시 열악한 처우 때문이다. 요양보호사는 세계적으로 고령층 여성이 주로 찾는 직업인데, 한국은 더욱 편중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결과 2016년 한국 요양보호사의 평균 나이는 58.9세로 OECD 평균(45세)보다 13.9세나 많다.

그런데 월평균 근로시간은 100시간이 넘고, 처우는 최저임금 수준이다. 전지현 요양서비스노조 사무처장은 "요양보호사는 남아돌지만, 열악한 처우나 인식 수준이 현장을 떠나게 만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무작정 숫자 늘리지 말고 예비군 체제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올가을 코로나19가 재유행하거나, 나중에 또다른 감염병 사태가 올 때를 대비해서라도 단순한 인력 증대가 아닌, 노동환경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이번에야 어떻게든 인력을 끌어모아 급한 불을 껐다지만, 지금 수준의 인력 규모가 계속 유지될 가능성은 낮다"며 "감염병은 계속될 수밖에 없으니 인력 양성, 관리에 필요한 큰그림을 그려둬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를 2년간 치러낸 경험도 있으니 이제 비상시 단계별 인력수요를 가늠해 예비군 형태로 필요 인력을 준비해두는 방안을 마련할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문제가 터졌을 때 그제야 조직을 키우고 사람을 늘리는 방식보다는, 평소 자기 일을 하다 동원령이 내리면 출동하는 '감염병 재해의료지원팀(DMAT)' 같은 것을 시·군·구별로 만들어두는 게 좀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