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을 넘고/ 무의식을 관통하여// 그림자 없는 나를 찾아/ 붓끝이 닳아 없어짐이 얼마이던고// 푸른빛 쫓아/ 긴 시간 꿈을 깨워// 수행의 흐름을 담아내고자/ 먼 길 떠나네"
후기 단색화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법관(65) 스님이 그의 신작 '선 2022' 연작에 부친 글 중 일부다. 그는 30여 년간 수행의 방편으로 붓질을 했다. 얇디 얇은 세필붓으로 캔버스 위에 무수히 많은 선을 그었다. 적게는 여덟 번, 많게는 열두 번을 반복한 '은근과 끈기'의 결과물이 그의 청색 단색화다. 그렇게 지난해부터 그린 '선' 시리즈 42점과 직접 빚은 다완(차 사발), 족자 1점씩 총 44점을 선보이는 그의 개인전이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법관은 "내 자신을 찾아가고 수행하면서 그림이 늘었고, 다시 그림을 보며 나를 찾는 순환이 이뤄졌다"며 "그림 그리는 일은 내 자신의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수행 과정과 비슷하다"고 했다. 강원 강릉에 있는 능가사 주지인 그에게 그리는 행위는 곧 수행이면서 삶 자체다. 차 한 잔 마시고, 작은 텃밭을 가꾸고, 나머지 15~20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는 게 그의 일과다.
불자로서 선을 수행하는 그의 그림은 선화(禪畵)에 속하지만 종교에 갇히는 것만은 경계한다. 정규 미술교육은 받아본 적 없는 법관은 "가장 자유로울 때 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며 "삶의 일부분이나 내면이 투영된 작품으로 봐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작업은 형태의 재현에서 벗어나 정신의 힘을 드러낸다. 씨줄과 날줄로 만나는 한 획, 한 획에는 그의 공력이 배어 있다. 가까이서 화면을 들여다보면 삼베가 떠오를 정도다. 전시장 한쪽 벽면을 메운 가로 2m27㎝, 세로 1m82㎝의 대작을 보노라면 이 한 점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들였을 그의 정성과 시간을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이번 신작에선 고목의 나이테 같은 부드러운 곡선이 새롭게 등장하는데 "세월의 축적"이라는 게 법관의 설명이다.
전시에는 청색과 먹색뿐 아니라 적색, 황색 등 다채로운 색상과 6호부터 150호까지 다양한 크기의 작품을 선보인다. 5월 1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