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없는 다랑이에 잡풀만 무성... 움트는 복원의 꿈

입력
2022.04.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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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기다란 조각 논들이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이어져 있습니다. 산을 품은 시골마을의 고즈넉한 정취는 구불구불한 계단 형태의 '다랑이논'으로 완성되곤 하죠.

다랑이논은 산지가 많은 우리 국토의 특성상 전국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산비탈을 일구면서 나온 돌을 쌓은 '돌계단식' 다랑이논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 도마마을이 유일합니다.

지난 8일 도마마을을 찾았습니다. 이맘때면 물을 채워 넣은 다랑이논에서 모내기 준비로 분주한 농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드론을 띄워 내려다본 다랑이논은 기대했던 것과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모내기 등 벼농사 준비가 한창일 시기인데도 농민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찰랑찰랑 물을 대놓은 논도 없었습니다. 언제까지 논이었던 걸까, 메마른 땅 위엔 잡초만 무성했습니다. 형태는 다랑이논이 분명한데 진짜 '논'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90년대 말부터 마을 주민들이 고령화되었고, 수도작(논에 물을 대어 벼농사를 지음) 가격 경쟁력까지 떨어지면서 논이 밭으로 변하기 시작했죠." 수로 공사를 지켜보던 마을 이장 한병열(54)씨가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에도 다랑이논을 유지할 노동력이 점차 고갈되면서 벼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꾸준히 늘었고, 현재는 다랑이논의 90% 정도는 경작을 하지 않고 버려져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땅은 나머지 10% 남짓인데 벼나 고추, 들깨 등을 키우고 있습니다. 한씨는 "지금 다랑이논으로 복구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정으로 수로를 정비하는 중"이라며 "저쪽에선 밭을 갈아엎는 일도 시작했다"고 전했습니다.




한씨 말대로 지금 도마마을은 변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다랑이논에선 농수로 정비 공사가 한창이고, 마을 주민들과 관계자들이 분주히 오갑니다. 다랑이논을 국내 최대 국가 농업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마을 주민 전체가 논 복원에 팔을 걷어붙인 거죠. 도마마을은 2022년 '농어촌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마을환경 개선)' 최종 사업대상지로 선정된 데 이어 '농촌다움 복원사업'에도 선정됐습니다. 이 마을의 농촌다움은 다랑이논의 복원입니다.

한씨는 "우리 다랑이논은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계단을 돌로 만들었어요. 소중한 우리 전통문화가 고령화로 인해 훼손되고 소실돼 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는데 이렇게 보존 전승시킬 수 있는 방법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으냐"라며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곳은 지난 2012년 미국 CNN GO에 의해 '한국에서 가 봐야 할 아름다운 곳 50선'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다랑이논 한가운데 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지리산 자락을 타고 앞으로는 금대산이, 뒤편으론 삼정산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명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그 옛날 척박한 산비탈을 조금씩 조금씩 깎아 논밭을 일구고, 이를 터전으로 살아 온 조상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이 논에 다시 물이 채워지길 기대하며 도마마을을 빠져나왔습니다.


서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