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판사들의 대표 회의체인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법원행정처에 '판사들의 형사재판부 기피현상 심화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돼 판사들 업무는 가중된 반면,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은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전국 형사합의부 재판의 1심 미제 사건이 최근 5년새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11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법관대표회의에서 법관들은 "형사재판부에 대한 기피현상이 심해지고 있으니 증원할 재판연구원을 충원해달라"고 요구했다. 판사들은 공판중심주의 강화로 재판 절차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지만, 효율적 업무처리를 지원하기 위한 전자화 서비스나 인력증원, 제도 개선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사법정책연구원(원장 홍기태)이 지난해 11월 발간한 '법관 업무부담 및 그 영향요인에 관한 연구'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참여 법관 678명 중 형사사건을 선호한다고 응답한 이들은 4.1%에 불과했다. 법관들은 △재판절차상 검토할 내용이 많고 △양형 부담이 큰 데다 △언론노출 부담이 있다는 점을 기피 이유로 꼽았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배석판사는 "검찰 진술조서의 증거력이 제한되면서 피고인의 방어권은 보장됐지만, 법관 입장에선 살펴봐야 할 기록이 대폭 늘어나 재판도 오래 걸리고 심적 부담도 늘었다"며 "금융범죄 등 피고인이 다수인 복잡한 사건의 경우 판단을 내리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판사들의 형사재판부 기피현상은 미제사건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1일까지 선고가 나지 않은(미제) 1심 형사합의 사건은 1만2,624건을 기록했다. 2017년 8,993건, 2018년 9,431건, 2019년 9,335건, 2020년 1만1,809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1심 형사합의 사건의 접수 대비 처리(선고 및 조정결정 등) 사건의 비율(처리율)도 95.7%로, 최근 5년 사이 가장 낮은 축에 속했다.
법원행정처는 형사재판부 기피 현상을 막기 위한 뾰족한 해법은 없다는 입장이다. 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신재환 법원행정처 기획총괄심의관은 법관들 요청에 구체적 해법 없이 "고려하겠다"고만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행정처는 재판연구원 증원이 우선적으로 필요하지만, 사법부 예산이 지난해보다 줄어들어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재경지법의 한 형사합의부 부장판사는 "인사제도와 공판체계는 바뀌고 있는데 전자 서비스와 인력 증원 등 사법절차가 개선되지 않으면, 법관으로서 책임감과 소명의식이 아무리 강해도 업무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