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넘어 대한민국 근대 역사는 정동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죠. 올해는 '정동 르네상스' 원년이 될 겁니다."
서울 중구 정동. 어딘지 찾고 싶으면 서울 지도를 펼쳐놓고 한가운데를 찍으면 된다는 곳. 가수 이문세의 노래 '광화문 연가'로도 이름난 덕수궁 돌담길과 연결된 곳. 배재학당, 국립정동극장, 신아기념관, 옛 러시아공사관 등 한국 근대사를 아로새긴 역사문화시설이 50여 개소에 이르는 곳.
황선엽(66) 서울정동협의체 위원장은 지난 8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유행 국면이 해소되고 있는 만큼 올해부터 정동에 국내외 관광객이 모여들 거란 기대감을 표했다. 서울정동협의체는 정동 활성화 사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기구다. 협의체는 올가을 대규모 야외 축제를 기획하는 등 그간 보류했던 사업들을 본격 재개할 채비를 하고 있다.
협의체는 정동 일대에 근거지를 둔 26개 정회원 단체와 8개 협력회원 단체가 참여해 2016년 출범했다. 서울시가 2015년 정동 역사재생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2017년 이곳을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으로 지정하는 와중에, 민간 영역에서 정동 활성화 구상을 조직적으로 실현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였다.
협의체는 자원봉사단체, 종교단체, 출판사, 학교, 언론사, 외국 대사관을 회원으로 망라하고 있다. 주로 서울시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아 사업을 수행한다. 2020년엔 사업에 보다 전문성을 기하기 위해 서울정동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황 위원장은 "분야별 전문 기관들이 정동 활성화에 적극 참여하면서 큰 힘이 되고 있다"며 "주기적인 토론으로 발전 방안에 대한 논의도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황 위원장 또한 소속 교회인 구세군의 정동 중앙회관을 카페, 갤러리, 세미나실로 쓸 수 있도록 새단장해 정동 방문객 유치에 일조하고 있다.
정동 활성화 사업 역시 '도시재생'이란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일반 도시재생 사업과는 결이 한참 다르다고 황 위원장은 강조한다. 도시재생이 보통 재건축, 재개발 등 지역 주민의 주거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정동 재생'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려는 보다 공공성 높은 사업이라는 것이다. "정동은 격변기 대한민국의 가장 중심에 있었습니다. 근대문화 유산과 옛길을 아우르는 '도시마을'이죠. 오래된 역사문화시설들이 연륜을 더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황 위원장은 그간의 협의체 활동이 정동에 활기를 불어넣을 전문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면, 향후 활동은 정동을 테마로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드는 일이 될 거라고 밝혔다. 그런 이행기의 당면 과제로는 정동의 명소를 시민에게 알릴 수 있는 거점 시설 조성을 꼽았다. 그는 "정동의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센터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정동역사문화센터를 만들어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하는 참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고등학생 시절 구세군 교회를 다니며 정동과 맺은 인연이 벌써 50년을 넘어섰다. 황 위원장은 "한국 근대사의 출발점인 정동이 과거와 현재, 미래 세대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며 "민간뿐 아니라 지자체와 정부의 더 큰 관심이 모인다면 정동 르네상스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