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장애인이라 지방 장거리 출장이 힘들긴 해요. 하지만 아무리 멀어도 장애인들의 보조기기를 고쳐 주고, 그들이 제품을 편리하게 쓰는 것을 보면 너무 뿌듯해요. 휠체어를 타고 일하는 저를 보시고 보호자들께서 '언제든 오셔서 차라도 한잔 마시고 가라'며 응원해 주실 때면 없던 힘도 나죠."
12년째 장애인 이동용 보조기기를 만들고 수리하는 김노석(60)씨는 1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 출장을 이야기하며 활짝 웃었다. 김씨는 장애인 보조기기를 다루는 기사지만, 동시에 중도장애를 앓고 있는 장애인이기도 하다.
장애인의날(20일)을 앞두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삶의 희망을 놓지 않으며 다른 장애인을 돕고 있는 김씨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김씨는 1997년 갑작스러운 낙상사고로 척추가 손상돼 장애를 갖게 됐다. 진단명은 '척추 손상 하지 불완전 마비'. 그는 현재 부분적으로 감각은 남아 있어 통증을 느끼지만, 걸을 수는 없는 상태다. 김씨는 "처음 장애 판정을 받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삶을 자포자기한 채 7년 동안 집 안에서 은둔생활을 했다"고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특히나 활동적이던 옛 모습이 자꾸 떠올라 많이 힘들었다"면서 "당시 스트레스로 난청이 생긴 탓에 지금까지도 보청기를 끼고 살아간다"고 덧붙였다.
그러던 김씨는 우연히 지인을 통해 '목공예'를 접하게 됐다. 김씨는 "'죽더라도 밖에 나가서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목공예를 시작했다"면서도 "막상 나무를 가지고 크고 작은 물건을 만들다 보니 온갖 잡념이 사라져서 너무 좋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실력을 갈고닦은 후 김씨는 2005년 '지방 장애인 기능경기대회'와 '전국 장애인 기능경기대회' 목공예 직종에 도전해 모두 금메달을 땄다.
첫 도전으로 맛본 성취감은 김씨의 또 다른 도전으로 이어졌다. 그는 "비록 내가 장애인이지만 상을 받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다"며 "목공예에 이어 가구 만들기도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가구는 무거워서 나 같은 중도 장애인에게는 어려운 종목이지만 꾸준히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전국 장애인 기능경기대회' 가구 제작 직종에 출전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점점 삶의 활기를 되찾던 김씨는 2010년 서울 용산에 있는 한 장애인 봉사단체에서 한 달 동안 봉사활동을 했다. 그곳에서 장애인 보조기기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그 단체는 서울시가 지원하는 장애인 보조기기를 조립해 장애인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했다"며 "봉사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장애인 제품에 마음이 가더라"고 전했다.
김씨는 같은 해 현 직장인 '이지무브'에 입사했다. 이지무브는 2010년 현대차그룹이 설립하고 다수 공익법인이 참여한 사회적기업으로, 이동약자를 위한 특수차량·이동용 전동기기·보조기기를 만들어 공급한다. 김씨의 작업실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보조기기가 많이 눈에 띄었다. 김씨는 "회사에서 하는 업무가 예전에 상을 받았던 가구 제작과도 관련이 있다 보니 재미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세 유지기기 담당' 인데, 주로 장애 아동을 위한 보조기기를 제작·개조·수리·검수하고 있다. 특히 "보조기기에 문제가 생겼다"는 손님들의 연락을 받으면, 전국 어디든지 찾아가서 제품을 손본다. 김씨는 "장애인들마다 몸 형태가 제각각이고 장애 유형도 모두 다르다 보니 제품을 개인에 맞게 개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꼼꼼하게 하지 않으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검수 과정 하나하나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고 소개했다.
이지무브 관계자는 "(김씨가) 장애를 가지고 일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을텐데 불편한 몸으로 전국에 출장을 가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며 "직원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는 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훌륭한 손 기술로 꾸준히 일하시는 것을 보면 존경스러울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김씨의 직장 생활이 처음부터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탓에 항상 휠체어에 의존해 일을 하거나 이동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김씨는 "가끔 통증이 심해 일하기 힘들 때도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특히 커다란 제품을 운반하는 일이 휠체어를 탄 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김씨는 "다행히도 2년 전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근로지원인 서비스가 생겨 지금은 그 불편함이 사라졌다"며 "제도가 생긴 뒤 아주머니께서 2년째 일을 도와주신다"고 설명했다.
근로지원인 서비스는 핵심 업무 역량을 지녔지만 장애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중증장애인 근로자의 업무를 돕는 제도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주관한다.
김씨는 전국을 다니다보면 짧은 거리의 이동도 꽤 어려울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가끔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 있다"며 "6년 전 경기 광주시에 출장을 갔을 때 1층 집이었는데도 계단 5개 정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리를 해야만 한다는 마음에 휠체어에서 내려 기어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고 떠올렸다.
신체적 불편보다 김씨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시선이었다. 그는 "한 장애 어린이의 부모님이 '나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장애을 위한 기기를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 하는 시선을 보냈다"며 "그 바람에 저 역시 부모님이 불안해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고 일도 제 속도를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직접 들었다. 김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실내 체육시설 이용 인원에 제한이 있었을 때 장애인 30명 정도가 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쳤다"며 "그런데 뒤늦게 온 비장애인 한 명이 '왜 장애인들이 이렇게 상주해 있냐'고 화를 내는 말을 들어서 마음이 아팠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입장이 선착순이라는 말에 두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을 뿐이었다"며 "장애인도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김씨는 마음이 아프지만 장애인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을 극복해 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했다. 그는 "더 열심히 일하다 보니 오히려 장애인으로서 더 섬세하게 알고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보호자들도 더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지난해 강원 원주시 출장에서 만난 장애 아동을 떠올렸다. 그는 "그곳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쯤 돼 보이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아이를 만났다"며 "그 아이가 사용하고 있는 보조기기가 아이에게 전혀 맞지 않게 설계돼 머리를 제대로 지지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즉시 머리 지지대 형태를 다르게 개조해 주니 아이가 말은 하지 못하지만 웃음을 지어 보였는데 정말 뿌듯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저와 같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제가 만든 보조기기를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모든 순간이 기쁘다"며 "특히 이처럼 아이에게 딱 맞게 제품을 만들어 줬을 때는 날아갈 듯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보조기기를 만들고 수리하는 업무뿐만 아니라 장애인 관련 교육 활동도 활발히 하고 했다. 김씨는 4년 전 경기 수원시 특수학교인 서광학교에서 장애 학생들에게 목공예를 가르친 경험이 있다. 목공예는 김씨가 2005년 장애인 기능대회에서 금메달을 두 번이나 딴 종목이다.
김씨는 "장애 아이들은 목공예라는 것을 접하기 힘들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꼭 알려주고 싶었다"며 "(자신이) 학교 측에 직접 요청해서 진행한 수업이었고 당시 학부모님들로부터 고맙다는 편지도 받는 등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장애인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도 빼놓지 않았다. 김씨는 "겉으로 드러난 상처도 치료해야 하지만 마음의 아픔을 돌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장애인들이 자포자기하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사회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그러면서 "마음을 다스리는데 운동이 큰 도움이 됐다"며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다.
김씨는 6년째 아이스하키 인천 클럽팀(인천바로병원 파라아이스하키팀)에 소속돼 있고, 2년 전부터는 배드민턴 동아리에서도 운동을 하고 있다. 그는 "주말마다 장애인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운동을 한다"며 "몸도 좋아지지만 무엇보다 삶에 큰 활력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인식 교육을 하는 데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다. 그는 3년 전 세종시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을 진행했다. 그는 "휠체어 수리를 위해 방문한 초등학교에서 특수반 교사로부터 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망설이다가 교육을 하게 됐는데 많이 떨렸지만 생각보다 큰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궁금한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묻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다"고 밝혔다.
중증 장애를 앓는 상태에서도 장애인 이동용 보조기기를 만들고 수리하는 김씨에게 '장애인 이동권'이란 어떤 의미일까.
김씨는 최근 이슈가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시위에 대해서 "주위 동료들과 만나면 이 사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며 "엘리베이터나 저상버스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듯 이 시위가 장애인만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시위라고 봐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장연은 지난해 12월부터 이동권을 포함한 장애인 기본권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서울 지하철에서 출근길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전장연 시위에 대해 "수백만 서울 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라고 비판하며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김씨는 "정치권에서 그렇게까지 혐오 발언을 하면서 비판해야 하는 사안인지 모르겠다"며 "어차피 나중에 그 분도 노약자가 될 것이고,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되면 모두가 편해질 수 있는데도 그런 말을 들으면 장애인 입장에서 마음이 아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조금만 더 장애인을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의 회의 후 지하철 시위를 잠정 중단한 전장연은 20일 장애인의 날까지 인수위가 예산, 입법 요구에 책임 있는 답변을 주지 않는다면 시위를 재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