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행위로 다치거나 사망한 중증장애인의 미래 소득을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법원 판결이 재차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법원은 중증장애인들의 미래 소득을 손해배상액으로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미래 소득을 평가하는 기준도 획일적이라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다.
18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부장 임기환)는 지난 1월 장애인복지시설 활동지원사에게 폭행당해 사망한 지적장애 1급 장애인 A씨의 유족이 시설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폭행을 방치한 시설장은 물론 관리·감독 책임을 다하지 않은 지방자치단체와 국가에도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그러나 A씨의 일실이익(逸失利益)은 인정하지 않아 '반쪽짜리' 판결이란 지적이 나온다. 일실이익은 피해자가 폭행과 교통사고 등 불법행위로 인해 다치거나 사망해 잃게 돼버린 미래 소득을 뜻한다. 법원은 피해자가 다치지 않았거나 살아있었다면 만 65세까지 근로가 가능했는지를 기준으로 일실이익을 계산한다. 일실이익은 도시 일용직 노동자의 일당을 기준으로 산정되며,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는 약 14만 원으로 책정돼 있다.
법원은 A씨가 ①지적장애 1급 장애인이었고 ②시설에서 엎드려 생활했던 점을 감안해, 살아있었더라도 일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봤다. 법원은 또 A씨의 장애인 연금 등도 타인에게 양도될 수 없다고 판단해 잃어버린 소득에 포함하지 않았다.
중증장애인의 미래 소득을 인정하지 않은 판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서울중앙지법은 2009년 정신병원 격리실 출입문에 목이 끼어 사망한 지적장애 2급 장애인 B씨의 유족이 정신병원과 국가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미래 소득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적장애 2급 상태로는 일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법원이 중증장애인의 미래 소득을 모두 부정하거나 아주 낮은 수준으로 인정하는 것을 두고, 법조계와 학계에선 문제 의식을 드러냈다. 김남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장애인은 무직자라도 도시 일용노동자 임금을 모두 일실이익으로 인정받는다"며 "반면 중증장애인은 불분명한 기준으로 근로능력을 평가절하당하고 일실이익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도 "지적장애 1·2급도 비율은 낮지만 취업을 한다"며 근로능력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중증장애인의 미래 소득을 어느 정도 인정한 판례도 있다. 대구지법은 2014년 바다수영대회에 참가했다가 조난을 당해 사망한 자폐성장애 1급 및 지적장애 2급 장애인 C씨의 유족이 울산시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도시 일용직 노동자 임금의 50%를 C씨가 잃어버린 소득으로 간주했다. 대구고법 또한 1심 판단을 유지했고 판결은 확정됐다. 재판부는 "현재의 장애만을 이유로 평생 소득활동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법원이 중증장애인의 일실이익과 관련해 보수적인 판결을 내림에 따라, 잃어버린 미래 소득을 판단하는 기준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법원은 '소득 활동에 투입하지 못한 시간' 또는 '삶을 즐길 기회를 상실한 것'도 손해배상액에 포함시키고 있다. 장애인 노동착취 사건 법률대리를 맡았던 최정규 변호사는 "도시 일용노동자 임금 이외에 일실이익을 산정하는 다른 기준들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며 "법원이 사회보장급여를 미래 소득에 포함하는 등 대안을 고민해서 중증장애인의 일실이익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짚었다.